[권은경]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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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나 정치, 경제의 발전 정도와는 무관하게 자연재해에 자유로운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연재해를 당한 이후 정부의 피해복구 노력인데요. 복구사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하는지 그리고 사회가 정상화가 된 이후에는 유사한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얼마나 잘 보강하는가 등이 바로 한 나라 정부가 정치를 제대로 하는가 판가름 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겁니다.

8월 말 함경북도 지역에 태풍으로 입은 피해의 후과가 북한내부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어 남한과 국제사회의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피해복구와 주민생활의 정상화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함경북도 두만강변을 휩쓴 태풍으로 사망자 138명, 실종자가 400명에, 6만9천 여 명은 집을 잃었다고 합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최근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이는 무산군을 방문했다면서 무산군에 사람이 살았다고는 믿기 힘들만큼 피해가 충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무산군에는 2만4천 명 정도가 한데잠을 자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이 지난 16일 내놓은 ‘2016년 함경북도 합동실사’ 보고서는 두만강을 따라 위치한 함경북도의 무산군, 연사군, 회령시가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고 무산군은 5만 가구 이상이, 연사군과 회령시는 각각 1만~5만 가구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프레스도 수해 피해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도했습니다. 아시아프레스는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두만강 연안에서 희생자가 많이 속출했고 중국이 북측으로 시체를 넘겨 보내 주기도 했지만 아직 시체를 찾지 못한 실종자들이 더 많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북한당국이 대외선전매체들을 통해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하며 내보내는 사진과 영상자료들도 피해가 얼마나 심각하고 끔찍한지 잘 보여줍니다. 단층집 지붕까지 흙더미가 쌓여있는 모습, 심지어 아파트 고층까지 물에 잠긴 사진들, 엿가락처럼 휘어져 끊긴 철도에 형체도 없이 무너져버린 건물 등,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처참했을지 상상이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큰 물난리가 나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엄청나고 2차적인 피해까지 속출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을 버려둔 채 북한당국은 9일 5차 핵실험을 진행 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심각한 자연재해가 일어날 경우는 그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만사를 제쳐두고 피해지역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피해상황을 보고받고 긴급복구 대책을 마련하기에 바쁩니다.

예를 들어 지난 12일 저녁시간에 남한의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바로 다음날인 13일 국무총리가 경주를 방문해 관계부처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고 복구대책을 논의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수해를 입은 주민들의 생명이나 안전, 피해대책 마련과는 전혀 무관한, 아니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 뻔한 핵실험을 감행한 것입니다. 보통의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 후 북한언론에 등장하는 김정은의 행보도 수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거나 민생을 챙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군부대 산하 농장을 시찰하거나 공장건설 완공을 축하하는 방문에 심지어 22일에는 핵실험 관계자들과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국가적으로 긴박한 상황에 처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할 수 있는 상식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그나마 북한당국이 피해복구를 위해 세운 대책이라고는 인민군, 돌격대, 타 지역 주민 등 10만 명을 수해복구지역에 총동원할 것을 지시한 것 그리고 다음달 10일 즉 당창건기념일까지 복구완료를 명령한 것입니다. 수마로 초토화된 도시를 한 달 안에 복구한다는 가능한 일이 아니지요. 또 주민들의 살림집이 아니라 사적건물 보수공사를 일차적 목표로 정해 건설자재들도 사적건물 공사에 먼저 투입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북한선전매체들은 김정은이 인민을 사랑하는 지도자라고 늘 선전하고 있지만 수해와 함께 보여준 김정은의 모습은 인민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머리 속에 들어 있지 않는 지도자였습니다. 이제 막 추분도 지나 남한도 선선해지기 시작했는데 북쪽 수해지역은 더욱 한기가 느껴질 것 같습니다. 가정집을 잃은 수십 만 이재민들의 초겨울이 걱정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