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국제 외교무대에 북한이 설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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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의 요아킴 가우크 대통령과 부인 다니엘라 샤츠 여사가 지난 10일부터 나흘간 서울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독일 대통령실은 보도 자료를 통해 이번 방문은 한반도 분단 70주년과 한독 외교관계 수립 25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독일 대통령 내외는 방한 기간 내내 유독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과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들과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가우크 대통령 내외는 ‘여명학교’라는 탈북 청소년들을 특성화해 교육하는 학교를 방문했고 영부인 샤츠 여사는 탈북 여성의 남한사회 정착을 돕는 시설인 ‘착한 엄마 센터’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13일 ‘착한 엄마 센터’의 협조요청을 받아 샤츠 여사와 탈북 여성들의 면담을 도왔습니다. 샤츠 여사는 25년 전 통일을 이루어낸 독일의 경험에 비춰 남북 간의 엄청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차이는 통일 이후 극복해야할 큰 과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한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들의 어려움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내부의 인권상황과 북한당국의 폐쇄성으로 인해 탈북자들이 남한정착과정에서 겪는 문화적 충격을 잘 극복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 심각한 걱정을 하고 있지만 북한내부 상황을 잘 몰라 아쉬워하는 샤츠 여사에게 앞으로 독일에서 열릴 인권행사 등 북한정보를 전달할 것을 약속하며 이날 방문을 마무리했습니다.

독일연방 대통령은 한국이나 미국의 대통령과는 달리 행정부를 이끄는 수반이 아니라 대외적으로 독일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대통령 내외가 이번 방문 중 북한 인권에 대해 관심을 표하고 탈북자들을 만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과 같이 북한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북한인권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국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초 발표된 북한인권 조사위원회의 권고안에도 북한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들이 컨텍 그룹(contact group) 즉 ‘접촉 그루빠’를 만들어서 북한과 대화할 것을 제안한 것인데요. 권고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면 “북한과 역사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있는 국가들 그리고 북한의 주요 협조자들, 또 6자회담과 같은 체제를 활용해 이미 북한과 대화를 하는 국가들은 ‘접촉 그루빠’를 형성하여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계획들을 지원할 것”을 권고한다는 내용입니다.

접촉 그루빠는 북한당국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믿고 의지하는 국가들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이미 북한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던 나라들 속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우려가 점차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카타르 정부가 최근 북한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 취한 조치가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제가 유엔총회를 방문해 카타르 유엔 대표부의 외교관을 만났을 때만 해도 이 나라의 공식입장은 ‘북한 인권문제에 거리를 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만난 외교관 개인은 탈북자의 비극적인 증언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다는 개인적 소견을 말했으나 본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여전히 기권이라고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투표를 했는데요. 이후 올해 5월경 카타르는 자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 90명을 집단해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북한당국이 국제적 수준의 노동규정을 무시하고 건설현장 안전수칙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9월에는 카타르의 건설회사가 북한 노동자의 월급을 노동자 개인에게 직접 입금하는 방식을 도입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이 같은 사례는 북한이 지금과 같은 인권상황을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와 공존할 여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북한인권 상황을 언급하고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활동에 대해 ‘공화국 붕괴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모략’이라는 북한 당국의 강변과 주장을 깨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당국은 이미 북한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로 구성될 접촉 그루빠 국가들과 인권문제에 관한 보다 전향적인 대화에 나설 때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