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이산가족, 그 눈물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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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진행된 제20차 이산가족상봉 첫 번째 행사가 22일 마무리됐습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 530명이 20일 오후 3시 첫 만남을 시작으로 각각 2시간씩, 2박 3일 동안 총 6차례에 걸쳐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이번 이산가족상봉 소식들을 살펴보니 두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옵니다. 먼저 직계가족보다는 삼촌과 조카 또는 사촌, 형제간의 만남이 대다수였습니다. 둘째, 상봉 장소에 나온 대다수 이산가족들이 80대 이상의 고령이라는 점입니다.

부부간이나 직계 부모와 자녀가 만난 가족은 다섯 가족에 불과했습니다. 80, 90대의 고령자가 많아 행사장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의료진과 구급차가 대기하기도 했습니다.

이산가족 지원 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북측 가족을 만나겠다고 신청한 남측 이산가족은 약 3만 명에 달합니다. 이 신청자 중 절반 정도인 약 6만7천 명이 북측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생존자 중 절반 이상은 80대 이상의 고령자로 해마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중 4천여 명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북한당국은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남한을 위협하고 달래는 수단으로 삼고 있고 남측은 이런 기회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일회적인 행사 위주의 북측 방식에 할 수 없이 응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진행되는 상봉행사에서도 가족들의 자유로운 만남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본 것처럼 가족들은 65년간 헤어져 지내던 혈육을 단 3일간, 겨우 12시간 만나는 것이 고작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생사조차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이 그나마 당국이 짜준 대로 잠깐씩 만났다가 다시 기약 없는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분단국가로서 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독일의 경우는 남북한의 경우와 전혀 달랐습니다.

1960년대 초반 베를린 장벽이 가로 놓이자 동서독의 이산가족도 크게 늘었습니다. 당시 에르하르트 (Ludwig Erhard) 서독 총리는 이산가족 재결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라이카우프 (Freikauf)라는 정책을 펼칩니다. ‘자유를 구매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 정책은 동독에 살고 있던 이산가족이 서독으로 이주하는 대신 서독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을 동독으로 보내주는 정책이었습니다. 이 정책으로 1965년부터 1970년까지 동독에 살던 약 2,700여 명의 이산가족이 서독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1972년 서독의 브란트 (Willy Brandt) 총리는 동독과 통행협정과 기본조약을 체결합니다. 이에 기초해 서독의 이산가족은 일 년에 총 30일 간 동독을 방문할 수 있게 됩니다. 1970년대에만 전체 250만 명의 이산가족이 동독을 방문했습니다.

1980년대는 더 늘어나 서독의 대규모 경제지원에 대한 화답으로 동독 정권은 이산가족 방문규제를 대폭 완화했습니다. 1987년 이후에는 해마다 120만 명의 동독 이산가족이 서독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 간의 이산가족 정책과는 그 규모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제 24일부터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남측의 가족 90명이 북측의 가족 188명을 만나는 2차 상봉행사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65년의 긴 이별을 12시간의 만남으로 달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잔인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만났던 가족들은 향후에는 다시 연락을 하거나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상봉행사가 오히려 이산가족들에게 이중삼중으로 더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 9월 21일 유엔 인권이사회 토론회에서 마이클 커비 전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도 이 문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커비 위원장은 이산가족들이 인터넷 통화나 전자우편, 편지 등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북한 당국은 이런 제안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문제는 아닙니다. 정치적 결단만 할 수 있으면 가능합니다. 누구나 동의하듯 이산가족문제는 이제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남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결단이 필요해 보이고, 북한 당국도 이산가족의 아픔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는 반인륜적 정책을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인류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인정하는 국가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