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촛불집회 1주년, 민주주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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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한반도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세계를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이 허다하게 자행했던 군사도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남한의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엄청난 규모의 시민집회 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대통령직 사퇴를 요구하며 대대적인 인파가 촛불을 들고 2016년 10월 29일부터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그것도 반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같은 형식의 거리집회가 진행됐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시작된 집회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 6개월 동안 매주 주말마다 서울 시민 수십만 명이 모였고, 전국적으로는 최대 2백 3십만 이상의 시민들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가 놀란 것은 ‘6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집회가 열렸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수백만 명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전세계가 남한 전역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집회에 놀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폭력이나 무력 행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몇 차례 촛불집회에 직접 나가 봤는데요. 큰 무대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올라가 발언을 하고 문화공연도 함께 열려 다같이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치는 등 마치 축제 현장과도 같았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적 집회가 이렇게 장기간 대규모로 진행되는데도 폭력적 요소 하나 없이 평화롭게 진행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물론 대통령을 둘러싼 부정부패, 대통령 지인의 국정 개입, 정권에 호의적이지 못한 문화인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와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한 부정행위는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겁니다. 또한 그로 인한 현직 대통령의 탄핵 자체는 전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운 사건이며 역사적으로도 오점으로 남을 일입니다. 남한과 같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관료주의 관행과 일인독재 시절의 제왕적 지도자 관념이 정치권 내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될 것입니다. 또한 그 후 남한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간 대립과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점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바로, 남한 국민들의 민주적 시민의식으로 국가적 위기인탄핵 정국을 평화로운 시민집회로 마무리 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민들의 촛불집회에 이어 평화로운 방식으로 정권교체까지 이뤄 낸 점은 성숙한 민주화의 정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이는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민주화의 과정을 밟는 다른 국가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남한의 시민사회와 국민들에게도 촛불집회는 1987년의 민주화 항쟁에 버금가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난 1987년 6월의 민주화 투쟁이 법과 제도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계기가 됐다면 지난해와 올해 봄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는 국민들의 인식에서 민주화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이자 정치권 내에 존재하는 전근대적이고 관료주의적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국민적 의지를 보여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1주년을 맞이하는 촛불집회는 남한 국민들에게는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이 직접적으로 또는 국회나 언론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데 있습니다. 평소에는 언론을 통해 누구나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일을 비판할 수 있고, 일반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집회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고요. 정기적으로는 국회의 국정감사를 통해서 실제 국가정책에 문제가 없는지를 감시하고 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현직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탄핵을 논의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은 주기적으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을 국민들이 평가하는 겁니다.

지난 22일 일본도 중의원 총선거를 치뤘고 정치적 보수를 지향하는 자민당이 승리를 해 신조 아베 총리 체제가 지속될 예정입니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 경향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이 또한 일본 국민들의 선택입니다. 같은 주에 중국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를 가지고 정치국원과 상무위원을 선출해 시진핑 체제 2기를 출범시켰습니다. 단일정당과 사회주의 공화국을 정치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중국도 작은 변화지만 법적으로는 공산당이 추천하지 않는 후보도 인민의 추천으로 전국인민대표회의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비밀투표와 무기명 투표도 이뤄지는 등 중국 역시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주요 국가들은 국민의 뜻을 수용하는 절차를 자유롭게 허락해 국민과 함께 정치와 국정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오는 28일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이해 당시 촛불집회 장소였던 청와대 앞 광화문 광장에 촛불문화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주요 언론들은 국민들의 생각을 비롯한 여론을 다시 한번 점검하며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권을 평가하는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70년간 3대를 이어서 일가족 독재를 유지하고 있는 정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상들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