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만 모른다고 하는 납북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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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태국의 수도 방콕에 북한당국에 의해 납북된 희생자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납북문제에 대한 국제대회가 방콕에서 열렸기 때문인데요. 남한의 납북 피해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일본과 태국에서 납치돼 북한으로 사라진 희생자 가족들까지 다 함께 자리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가 일년간 준비한 행사라 저도 행사에 참석해 발표도 했는데요. ‘납북문제와 국제사회의 반응’이라는 제목의 국제토론회였습니다.

북한당국이 자행한 납치문제로 동남아시아에 있는 태국의 방콕까지 가서 행사를 한 것은 태국인 중에서도 납북 피해자가 있어 태국 정부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노차 판초이라는 여성이 바로 태국인 납북 피해자입니다.

아노차 판초이 씨는 1978년 마카오에서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이 여성의 행방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주한미군 출신으로 월북했던 찰스 젠킨스 씨가 2004년 일본으로 나온 이후의 일입니다. 일본에 정착한 젠킨스 씨는 북한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2005년에 책으로 출판 해냅니다. 책에서 태국인 여성 아노차 판초이 씨와 친하게 지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로 인해 태국 정부와 태국의 치앙마이에 살고 있던 판초이 씨의 오빠와 조카인 반종 판초이 씨는 실종된 아노차 판초이 씨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만 북한당국은 지금까지도 태국인 납치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젠킨스 씨가 북한에서 찍었던 가족사진 배경에 판초이 씨가 등장함으로써 태국인 납치는 북한당국만 부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그외 루마니아, 레바논 등 전세계 14개 국가에서 수십 명의 외국인들을 납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젠킨스 씨의 증언에 의하면 납치된 여성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과 결혼했고 간첩으로 해외에 파견될 요원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보위부나 정찰총국 출신의 탈북민들의 말도 젠킨스 씨와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내에 살게 된 외국인들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고의로 외국인 여성들을 납치했다는 겁니다.

남한이나 일본에서 납치해간 사람들도 당국의 필요에 의해서 간첩교육이나 대남 심리전 방송에 이용했습니다. 1969년 12월에 대한항공 서울행 국내선을 타고 가다 피랍당한 승무원과 승객들이 바로 대남 라디오 방송원으로 이용당했다고, 그 시기 같은 목적으로 독일에서 북한으로 유인납치된 오길남 박사가 증언했습니다. 또 일본에서 납치해간 사람들은 남한에 침투할 간첩들을 위해 일본어 교육에 동원됐다는 사실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에게 실토한 내용입니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북한당국의 몰지각한 행태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이번 토론회에는 남한에서는 1969년 대한항공 공중나포로 납북된 황원 씨의 아들 황인철 씨가 아버지의 송환을 호소했으며, 2008년 탈북을 준비하던 아들이 탈북하기도 전에 체포되어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아들을 찾고 있는 김동남 씨가 참석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활동가로 참석해 납치 및 강제실종은 북한당국이 자행하고 있는 다양한 인권유린 중 희생자의 정보가 외부세계에도 존재하는 유일한 인권유린 유형이라는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에 거대한 정치범수용소가 운영되고 있고 8만 이상의 정치범이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누구인지 희생자의 신원은 알 수가 없습니다. 고문이나 강제구금, 차별 등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인권유린의 대상이긴 합니다만 피해 당사자가 탈북해 나오지 않는다면 희생자의 신상을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북한의 폐쇄성 때문에 명확한 희생자 정보가 더욱 귀합니다.

하지만 납치와 강제구금은 많은 경우 사건의 발생지점도 외부이고 희생자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북한 외부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국인 젠킨스 씨가 판초이 씨를 기억하듯이 북한 내부에서 희생자를 만나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북한을 탈출해 나온 경우들도 많습니다. 해당국가 정부는 이런 정보들에 근거해 지속적으로 북한당국에게 납치 피해자를 자국으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당국은 이렇게 명확한 사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없었다며 납치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불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동남 씨의 아들 김경재씨 강제실종 건 경우만 보더라도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는 동안 보위부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북한당국은 김경재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황인철 씨의 아버지 납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가 다 아는 대한항공 공중나포 사건에서 11명의 승객과 승무원들이 북한에 억류된 것이 명확한데도 이들의 신분과 행방이 확인불가라고 북한당국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납북문제, 전세계가 다 아는데 북한당국만 모른다고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