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북 국방위 대남성명과 남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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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국방위원회가 또 다시 대남 비방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월 25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명의로 발표된 성명을 보도했습니다. 이날 보도된 장문의 국방위 성명은 대체로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첫째는 연합군사훈련과 한국 보수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비난이었고, 둘째는 북한의 언행에 대한 한국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남북대화와 관련해서 한국정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을 쏟아낸 것이었습니다.

한미연합훈련에 관해서 이 성명은 한국이 '연합체제 유지'와 '안보태세 강화'라는 미명 하에 유사시 북한지역에서 민사작전을 벌이게 될 한미연합사단을 편성하는 등 북침연습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남조선 당국의 묵인비호아래 기고만장해진 인간쓰레기들이 기습적으로 반공화국 삐라를 살포하는 광기를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최근 북한이 내놓은 대화제안이나 외교적 노력에 대한 한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과 관련해서는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 '경제봉쇄를 풀기 위한 궁여지책' '남남갈등을 노린 평화공세'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술수' 등으로 제멋대로 분석하고 있다면서 분노를 표시했으며, "남조선 당국은 제멋대로 해석하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야 한다"라면서 한국정부를 겨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성명은 "우리가 이러한 조치들을 내놓은 것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고, 미국의 덕을 본일도 없으며, 남조선 당국이 있어서 우리의 삶이 개선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국방위의 이러한 성명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실망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국방위원회는 1972년 사회주의헌법에 의거하여 설립되었고, 1992년 헌법개정을 통해 국가주석 다음의 권력기관으로 격상된 기구입니다. 그러다가 1998년 4월 헌법개정에서 국가주석직이 폐지됨에 따라 국방위는 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명서가 최고 국가기관의 위상에 맞지 않는 언어와 표현들을 담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되는 것은 한미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것은 북한이 6.25 전쟁을 도발했기 때문이고 그 이후에도 대병력주의를 고수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안보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적반하장의 비논리로 한미연합훈련을 계속 시비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며,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의 전망을 흐리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나 한국언론이나 전문가들의 대북 분석과 평가에 대해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사안을 북한식 잣대로 보는 편협함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다원적 민주주의 국가로서 정부가 민간기구나 언론 또는 민간인 전문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대북전단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정부가 이들 민간단체들에게 협력을 요청할 수는 있어도 강제로 살포를 금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최고존엄에 대해 불경스러운 언행을 하면 살아남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유롭게 정부나 대통령의 정책을 성토하고 반대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차이를 잘 알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보도나 전문가 평가에 대해 한국정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진정성 있는 대화를 위한 자세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정부와 국민은 건전한 남북대화를 반대한 적이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국자들 간에 오고 가는 말의 내용과 표현부터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거친 표현이나 욕설을 사용하지 않고도 반대할 것은 반대할 수 있으며, 비난할 것은 비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국민은 북한의 국방위원회가 노골적인 전쟁위협,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 정치체제 차이를 무시한 막무가내식 비방, 논리에 맞지 않는 공연한 비방 등을 자제하기를 바라며, 이보다는 한달 전에 한국정부가 제안한 고위급대화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정부 역시 정중한 말과 표현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변화가 남북대화의 전망을 밝게 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