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제주 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딘 헤스 대령 공적기념비'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딘 헤스(Dean E. Hess)는 미국의 기독교 목사로 6.25 전쟁에 참전한 공군 대령으로 한국전쟁 항공전의 영웅이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날 헤스 대령 서거 2주기를 맞아 그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제막된 것입니다. 제막식에는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딘 헤스 대령의 장남 레리 헤스 씨(75), 기념비 제작비를 후원한 광림교회 관계자, 마크 내퍼 주한 美 대사대리, 토마스 버거슨 美 7공군사령관 등이 참석했으며, 헤스 대령과 함께 출격했던 김두만 前 공군참모총장, 이강화 예비역 준장, 그리고 헤스 대령의 후원을 받았던 전쟁고아 출신 200여 명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전쟁이란 참혹한 것이지만 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는 법이고, 그 중 하나가 전쟁고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전쟁고아 출신으로 후일 독일의 부총리가 된 필리프 뢰슬러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3년 남부 칸호아에서 태어난 뢰슬러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생후 9개월 때 독일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독일로 건너갔고, 하노버에서 심장 및 흉부 외과 수술을 전공한 의사가 되어 군의관으로 복무했으며, 2009년 36세의 나이로 보건장관에 취임했다가 다시 부총리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전쟁고아 이야기라면 '네이팜 소녀'로 불리던 킴 푹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72년 당시 네이팜탄이 터지는 현장에서 화상을 입고 벌거벗은 채 내달리던 9세 소녀의 사진이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킴 푹은 그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1년의 투병생활 끝에 목숨을 건진 후 미국을 거쳐 현재에는 남편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에서 전쟁 피해자들의 멘토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50대 중반이 된 그녀는 유엔 친선대사로 전 세계를 누비면서 전쟁의 참상을 일깨우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킴 국제재단'을 설립하고 전쟁고아를 위해 병원과 학교를 지어주는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뢰슬러나 킴 푹 같은 전쟁고아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언제나 전쟁고아들을 살려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고, 전쟁고아들을 살려낸 군사작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 미국은 4월4일부터 사이공이 함락된 4 월 26 일 직전까지 3,300 명의 전쟁고아들을 미국과 호주로 실어나르는 'Operation Baby Lift,' 즉 '어린이 공수작전'을 전개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도 950명의 전쟁고아와 80명의 고아원 직원들을 구출한 'Operation Kiddy Car Airlift,' 즉, '유모차수송작전'이 있었습니다. 중공군의 총공세로 유엔군에게 철수명령이 떨어진 1950년 겨울, 미 제5공군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은 서울 종로 초등학교에서 1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철수명령을 거부한 채 해군에게 거짓 명령을 내려 아이들을 트럭에 태웠고, 일본에 있던 공군 수송기들을 불러들여 대대적인 수송 작전을 벌였습니다. 이 작전에서 딘 헤스 소령은 미 공군의 C-54 수송기 15대를 동원하여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피신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입니다.
작전을 주도했던 블레이즈델 중령은 명령 불복종 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습니다. 군법회의 최후 진술에서 블레이즈델 중령은 "누군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죽음에 내몰린 아이들을 죽게 놔두는 일이라면 저는 군복을 벗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군은 그를 처벌하지 않았고, 그는 1964년에 대령으로 예편하여 성직자로 돌아왔습니다. 2007년 전쟁고아들의 보금자리인 광주 충현원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딘 헤스 소령의 전쟁고아 돌보기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피신시킨 제주도에 보육원을 설립하는데 앞장섰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시로 한국을 방문해 고아들을 돌보면서 20여 년간 전쟁고아 후원금 모금에 앞장섰습니다. 이런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기려 한국 정부는 1951년과 1960년에 무공훈장을 그리고 1962년에는 소파상을 각각 수여했으며, 그는 1969년 대령으로 예편했습니다. 그가 몰았던 F-51머스탱 전투기에 새겨져 있었던 "By Faith I Fly"라는 글귀는 '신념의 조인(信念의 鳥人)'으로 번역되어 오늘날 한국 공군장병들이 부르는 군가의 가사가 되어 있습니다.
딘 헤스 목사는 2015년 고향 오하이오주에서 영면했습니다. 러셀 블레이즈델 목사와 딘 헤스 목사는 군복을 입은 천사들이자 6.25전쟁고아의 아버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는 성경말씀을 실천하는 인생을 산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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