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북 군사회담 제안과 황강댐 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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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을 통해 연일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하고 나섰습니다. 5월 20일 북한의 국방위원회는 공개서한을 통해 "불미스러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상호 군사신뢰를 보장하기 위해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한다"고 밝히고 한국정부에게 "지체없이 화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21일에는 인민무력부가 한국 국방부에 보낸 통지문을 통해 "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을 5월말 또는 6월초에 갖자"고 제안했으며, 이어서 22일에는 조평통의 원동연 서기국장의 담화를 통해 "군사회담의 시급한 개최"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국방부는 "지금은 북한의 비핵화가 우선"이라면서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북한의 이러한 제안은 5월 16일 임진강 황강댐 무단 방류 사건, 5월 18일 스위스의 대북 제재 발표, 5월 19일 엘리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의 방한 및 유엔 대북제재 지지 발언, 같은 날 러시아의 대북 금융거래 금지조치 발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쿠바 방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적도기니 대통령 취임식 참석 등 맞물리면서 어색한 부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과 좋은 관계에 있던 스위스와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인 러시아의 대북 제재 발표는 평양정권에게 심적인 타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스위스는 김정일 정권이 매년 200만 달러 이상의 고급시계와 명품들을 수입한 나라이며 북한에게 분유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해온 나라이기도 합니다. 특히, 스위스는 김정은 위원장이 어린 시절 5년 동안 유학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스위스가 자국 내 북한자산 동결, 은행지점 및 계좌 폐쇄, 광물수입 금지, 선박 항공기 운항 제한 등의 고강도 제재 조치를 발표한 것입니다. 러시아도 북한과의 금융거래 금지, 러시아내 북한 계좌 폐쇄 등의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북한이 고위 인사들을 쿠바와 적도기니에 보내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응하여 전통적 우방국들을 챙기겠다는 목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고립이 깊어지는 시기에 평양정부가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한 것에 여러 가지 속내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지난 5월 초순 제7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까지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칭하고 사실상의 선핵정치(nuclear-first politics)를 선언한 이상, 어떻게든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어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당대회 기간 동안 "자주권을 침해받지 않는 한 먼저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 "세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핵전파 방지를 위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 등의 발언을 했는데, 이것이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받기 위한 외교적 수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하는 것에도 유사한 의도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즉, 자신의 핵보유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희석시키고 대북제재에 균열을 초래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6자회담 재개와 함께 한반도평화협정을 위한 회담을 동시에 진행하자는 주장을 해왔고 여기에 중국도 동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시기에 군사회담이 열린다면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과 국제사회는 과거 6자회담의 전철을 기억하고 있으며 가짜 대화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개발 포기는커녕 오히려 핵보유의 기정사실화를 위해 진력하는 상황에서 대화가 개최된다면 북한에게 시간을 벌어다 줄 뿐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점을 한국 국민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자신들의 유일영도 체제를 고수하면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려고 하는 상황에서 평화협정을 운위하는 것이 어떤 위험성을 내포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도 북한의 군사회담 제안을 위장 평화공세로 보고 거부한 것입니다.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는 북한 제안의 순수성을 더욱 의심케 하는 사건입니다. 북한은 2009년 9월에도 황강댐을 무단 방류하여 한국 측 야영객 6명이 익사하는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그 직후인 2009년 10월 남북한은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접촉에서 댐 방류시 사전에 통보해주기로 합의했지만, 이번에 또 다시 아무런 통보도 없이 방류함으로써 한국 국민 6명이 실종되는 사태를 야기한 것입니다.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한다면 결코 황강댐 방류와 같은 무도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나라들을 통과하여 흐르는 국제하천의 경우 평화적인 수자원 관리를 위해 상류국과 하류국이 협력하는 것은 국제적인 관례이며, 유럽의 라인강, 다뉴브강, 동남아의 메콩강 등도 모두 이렇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상류국이 무단으로 물을 방류하여 하류국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북한이 이런 국제관례마저 준수하지 않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제사회와 한국정부 그리고 한국 국민은 진정성이 실린 대화라면 당연히 환영합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핵포기 및 무력도발 포기 의사를 행동으로 밝히고 이를 위한 협상을 원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당연히 환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