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국경일을 보면 동질감과 이질감이 교차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양력 1월 1일은 신년이며, 음력 1월 1일은 설날이고, 음력 8월 15일은 추석 즉 한가위 날입니다. 이날들은 북한에서도 민속명절입니다. 북한에서 5월 5일은 수리날, 즉 단오절입니다. 한국은 이날을 '어린이날'로 지정하여 기념합니다. 양력 8월 15일 역시 남북한 모두가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이날은 1945년 일본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가 일본식민지에서 벗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이날은 광복절로 명명하고 있으며, 북한은 해방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양쪽에서 같은 날들을 국경일 또는 명절로 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남북은 하나의 민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더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3월 1일 3.1절, 음력 4월 6일 석가탄신일, 6월 6일 현충일, 8월 15일 광복절, 10월 3일 개천절, 10월 9일 한글날, 12월 25일 성탄절 등을 국경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2월 16일 광명성절, 즉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일, 3월 8일 부녀절, 4월 15일 태양절, 즉 김일성 주석의 생일, 4월 25일 인민군 창건일, 5월 1일 국제노동자절,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 8월 15일 해방기념일,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정권창건일), 10월 10일 조선노동당창건일, 12월 27일 사회주의 헌법절, 12월 24일 김정숙 탄생일 등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진 국경일은 광복절이며,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을 국경일로 지정한 것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생일이 최대 명절이며, 나머지 주요 명절들도 당창건, 인민군 창건 등 사회주의국가 형성과 관련한 것들입니다.
인민군 창건일은 김일성 주석이 빨치산을 조직했다는 1932년 4월 25일을 기념하는 것인데, 금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83주년을 기념했습니다. 북한정권이 창건된 것이 1948년 9월 9일이므로 올해는 67주년이 되는데, 이렇듯 북한에서는 국가가 설립되기 훨씬 이전에 군대가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7월 27일도 남북간 이질성을 드러내는 날입니다. 이날은 1953년 6.25 전쟁 정전협정이 서명된 날로서 한국은 '정전기념일'로 명명하지만,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로 부릅니다. 같은 역사적 사건을 놓고 남과 북에서 매우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과 북의 최대 명절인 광복절과 태양절이 보여주는 이질성은 남북이 분단국가임을 실감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에게 있어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1948년 8월 15일 서울에서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건국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이날 비로소 국민, 영토, 정부라는 3대 요소를 갖춘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입니다. 때문에 2015년 8월 15일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국가로서 정치지도자가 매번 바뀌며, 특정 대통령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한편, 태양절은 북한의 최대 명절로서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50세가 되던 1962년부터 이날을 명절로 지정했으며, 김일성 주석 사망 후 3년상이 끝난 1997년부터는 태양절로 명명하기 시작했습니다. 2월 16일 광명성절은 김정일 나이가 마흔이 되던 1982년부터 명절로 지정되었으며, 태양절과 마찬가지로 각종 행사가 열립니다. 광명성절에서 태양절에 이르는 두 달은 북한의 축제기간으로서 주민들에게 고기, 당과류, 술, 담배 등이 특별 공급되고, 열병식, 전시회, 체육행사, 예술단 공연,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 꽃바구니 보내기, 전승기념관 참관, 주체사상 연구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됩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 제1비서의 생일인 1월 8일은 명절로 지정 받지도 않았고 북한당국이나 관영매체들도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김정은 비서가 너무 젊기 때문에 할아버지 및 아버지와 같은 반열에서 숭배받는 것을 아직은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남과 북의 국경일은 오랜 분단을 거치면서 커지고 있는 상호간 이질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어,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고 같은 국경일을 같은 의미로 기념할 수 있는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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