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다시 도마에 오른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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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권문제가 다시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15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북한의 인권유린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이 결의안은 12월 초 유엔 총회 본회에서 최종 채택되는 형식절차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한 이번 결의안은 북한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처형,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 탈북민 강제송환, 외국인 납치 등을 인권유린의 사례로 열거하고 있으며 처음으로 '해외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북한이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재원을 전용하는 것이 주민들의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반인도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의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11월 14~19일 동안 벨기에의 브뤼셀에서는 재유럽탈북민총연합회가 주최하는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열렸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청사 앞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비판, 풍자하는 그림들과 사진들이 전시되었으며 북한의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도 배포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동안 다른 인권 단체들도 인권 유린의 책임자들에 대한 ICC제소를 가정한 모의법정을 열고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4일 한국에서는 북한인권법이 발효되었습니다. 북한인권법은 2016년 3월에 국회를 통과했고 8월에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법은 한국 정부로 하여금 북한인권재단 및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설립하고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임명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설립절차가 진행 중인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여 정부에 건의하거나 인도적 지원방안을 연구하게 됩니다.

10월 10일 개소한 북한인권기록센터는 탈북민 증언 등을 통해 북한내 비인도주의적 범죄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기록·보관·관리하게 되는데, 관계자들은 통일 후 이 자료들은 북한에서 자행되었던 인권범죄들을 규명, 처벌, 청산하는데 쓰일 예정이어서 북한내 반인권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서독은 1962년에 동서독 국경지역인 잘츠기터(Salzgitter)에 중앙기록보존소(Erfassungsstelle)를 설치하여 통일될 때까지 30년 동안 4만여 건의 동독내 인권침해 사례들을 보관함으로써 분단 동안 동독의 인권을 개선하는데 기여했었습니다.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북한의 인권증진을 위해 국제기구와 외국정부들과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제고하는 일을 수행합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보여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 와서는 북한 지도부를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단죄하는 문제를 공공연히 논의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설립한 북한인권특별조사위(COI)는 북한인권에 대해 1년간 조사를 마친 후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나치시대에 버금가는 인권침해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고 지도자를 포함한 정부의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정부 역시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인 2016년 2월 발효시킨 대북제재법 HR 757에 의거하여 의회에 '북한인권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서도 강제노동, 고문, 처형, 언론자유 부재 등 인권유린 사태들을 지적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권력기관들을 주범으로 지목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움직임은 제반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인권증진(promotion)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지만 특정국가의 경우 정부나 국가기관에 의한 침해(abusive action)로부터의 인권보호(protection)가 매우 시급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압박이 당장 북한의 인권개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정권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기 위해서는 안보리의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아울러 정치체제의 존속과 핵개발에 올인하는 평양정권이 자발적으로 자국민에 삶의 질이나 인권문제로 관심을 돌릴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인류보편적 지고의 가치인 인권을 유린하는 사태는 북한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반드시 종식되어야 하고 이러한 당위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