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정유년의 미북관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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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정유년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지난 2016년도 참으로 숨가빴던 한 해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정치의 이단아’로 불리던 도날드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고, 북한은 두 차례의 핵실험과 24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유엔안보리가 일년 안에 대북제재 결의문을 두번 씩이나 채택해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단의 민간인들이 국정에 개입하여 이권을 챙기고 국사를 혼란에 빠뜨린 소위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을 물어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여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고,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 주말마다 열린 서울 광화문의 촛불시위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북한이 남한의 대통령 탄핵 사태와 관련하여 혼란을 부추기는 선전방송을 내보내면서도 정작 촛불시위 장면들은 거의 방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은 “매 주말마다 수십만 명 규모의 시위가 열리는데도 충돌사고가 없고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고 합니다. 대통령도 잘못하면 국민의 질타를 받고 탄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힘입니다. 북한 당국이 이런 장면들을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한반도는 격동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만, 2017년에는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가 어떠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트럼프 당선자에 대해 이런 저런 기대감을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트럼프 당선자가 유세기간 동안 했던 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한 말 중에 “미국이 왜 일본과 한국을 지켜주어야 하나.” “한국이 방위비분담금을 충분히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 등의 발언은 평양정권에게는 고무적인 내용일 수 있습니다.

6.25 전쟁에서 미국의 참전으로 한반도 적화통일 기회를 놓친 이래 지금까지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지상과제로 추구해온 북한으로서는 트럼프의 이런 발언들을 한미동맹 해체나 약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 등의 발언을 두고 트럼프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믿고 싶을 것이며, 한국을 따돌린 채 자신들과 깊숙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하고 싶을 것입니다. 지금도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를 원하며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고 싶어 합니다. 북한으로서는 트럼프 당선자가 이런 문제에 대해 얼마만큼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평양정권은 트럼프 당선 이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삼가면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1월 1일 발표된 김정은 위원장의 2017년 신년사도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지속하고 유엔의 국제제재에 맞서 ‘전민 총돌격전’을 전개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미국이나 트럼프 당선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평양정권의 기대에 그대로 부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트럼프 당선자가 “평양정권은 상종 못할 미치갱이 정권,” “북한이 핵장난을 하면 가만이 두지 않겠다.” 등의 강경발언도 쏟아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듣고 싶은 얘기들만 골라서 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 24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지도력은 ‘막강한 군사력과 도덕력'에 의해 구축된 것이며, 동맹은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정책수단입니다.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굳건하게 유지될 것이 분명하며, 당선 직후 트럼프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그리고 아베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이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또한, 트럼프 당선자는 국무장관에 친러시아 인사를 그리고 국방장관, 국토안보부 장관, 안보보좌관,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핵심 안보직책에 강경 안보론자들을 내정했습니다. 즉,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중국의 팽창주의를 강력하게 견제하겠다는 전략구상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비판하고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인상을 주장했던 사실이나 당선 직후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과 통화함으로써 중국정부가 중시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하는 자세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미국이 향후 대외정책의 초점을 ‘중국 견제’에 맞출 것이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의 유일 동맹국으로서 핵개발을 고집하는 북한을 호의적으로 봐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요컨대, 북한이 트럼프를 호락호락한 협상상대로 보고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거나, 미국이 고립주의에 빠져 한미동맹을 포기할 것으로 희망한다면, 한 마디로 부질없는 기대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보다는 북한의 핵개발 강행이 미국의 더욱 강력한 대응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