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2016년 북한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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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병신(丙申)년이 밝았습니다. 북한은 1월 1일 낮 12시부터 김정은 제1비서의 2016년도 신년사를 방영했습니다. 통상 북한의 신년사는 한해 동안 정부의 실적을 자평하고 새해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내용들을 담아내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에겐 늘 관심의 대상입니다. 금년 신년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특징으로는 정치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이 줄고 대신 경제와 사회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정치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한국이 핵전쟁 연습을 하고 있다는 주장, 한미 연합훈련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매년 반복해온 상투적인 대미·대남 비방은 금년 신년사에서도 반복되었지만, 북한의 핵능력을 과시하는 등의 도발적인 언급은 자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제건설과 함께 핵무장도 병행한다는 “병진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제와 관련해서는 ‘인민생활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전력생산을 강조했으며 또한 외세 의존이 없는 경제강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자강력 제일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사회 분야와 관련해서는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과 ‘청년 강국’을 부쩍 강조하고 있습니다. 핵문제와 관련하여 주변국들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핵무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이며, 그보다는 북핵에 대한 국제적 비난, 중국과의 관계개선의 필요성, 남한과의 경제협력 필요성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신년사가 “인민생활 향상”과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을 강조하고 청년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에는 내부적으로는 주민생활 향상에 깊은 관심을 보임으로써 태생적 한계를 가진 세습권력의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경제를 크게 강조하면서도 분야별 성과를 나열하던 예년의 경우와는 달리 금년에는 큰 목표들을 개괄적으로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다분히 금년 5월에 개최될 제7차 당대회를 염두에 둔 결과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당대회는 조선노동당의 최고 의결기구이지만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35년간 열린 적이 없으며 대신 당대표자회가 네 번 열린 것이 전부입니다. 말하자면,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한번도 당대회가 열리지 않았는데, 이번에 36년 만에 다시 열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김정은 제1비서에게 있어 금년 당대회는 당과 군에 대한 장악력과 정권의 안정성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로운 정책구상을 천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신년사에서는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 특징으로는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대남발언의 강도가 높아진 점과 그러면서도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년 신년사는 외세간섭 배제와 자주통일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대해서 “북한의 체제변화를 추구하여 북남 사이의 대결과 불신을 악화시켰다”고 비난하고 있으며 미국을 향해서는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한미동맹을 이완시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잡아나가겠다는 의도를 표출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통일’이라는 단어를 27회나 사용하면서 한국의 “북한 체제변화 추구”를 비난한 것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남한이 통일을 주도하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드러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화해와 단합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 앉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했던 2015년도 신년사에 비해 후퇴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북한이 여전히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간 경제협력 재개를 희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내외 전문가들은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를 통해 천명한 ‘경제강국 건설’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북한이 가진 내부자원의 한계를 감안할 때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외부의 자본과 기술이 자유롭게 유입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를 위한 법적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남북간 경제협력의 활성화도 말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와 국민도 원하고 있는 사안이지만 북한이 핵무장을 계속하고 대남도발과 위협을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5월의 당대회가 북한이 핵무장과 도발을 멈추고 남북상생의 길로 나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보다 생산적인 남북관계를 열어가는 새로운 구상이 발표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