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乙未)년 말미에 북에서 들려온 가장 비중이 있는 뉴스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대남정책을 총괄해온 총책이자 김정은 제1위원장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했던 실세의 한 사람이었던 김양건의 사망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온건파의 퇴장이 남북관계의 경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병신(丙申)년 벽두에 발표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는 이런 우려를 기대감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신년사는 정치․군사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대신 경제․사회 문제들을 강조했습니다. 핵능력을 과시하는 내용은 일체 없었고 ‘병진정책’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강조된 것은 ‘인민생활 향상,’ ‘경제강국,’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 ‘청년 강국 건설’ 등이었습니다. 남쪽을 향해서는 “화해와 단합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 앉겠다”는 표현으로 대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놓고 본다면 금년에는 김정은 정권이 내부적으로 주민의 삶의 질에 신경을 쓰면서 남북 대화에도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것으로 보였습니다. 대외적으로도 북핵 및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하여 이미지 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번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1월 6일 오전 기습적으로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이런 기대감을 일거에 소멸시켜버렸습니다.
핵실험 직후 북한은 “첫 수소탄 실험 완전 성공”을 선언하면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한 정정당당한 자위적 수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이나 세계의 북한 전문가들은 별로 믿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5.0 이하의 지진 규모와 10kt 이하의 폭발력을 감안하면 수소탄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통상적인 원자폭탄을 터뜨리고는 수소탄을 실험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전문가들은 수소탄은 아니더라도 증폭분열탄이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1세대 핵탄인 원자폭탄은 플루토늄 또는 우라늄이 원료이며 이들의 핵분열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한 분열탄입니다. 2세대 수소탄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한 융합탄이며, 통상 수십 배의 폭발력을 발휘합니다. 증폭분열탄은 원폭의 내부에 소량의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배치하여 폭발력을 2~5배 높인 것인데, 엄밀하게 말해 수소탄은 아니지만 수소탄의 원리가 일부 활용된 것이어서 수소탄으로 가는 길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핵실험이 수소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종류의 폭탄인가를 떠나 이번 제4차 핵실험은 북한이 중단 없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며, 2015년 이후 세 번에 걸쳐 잠수함발사탄도마시일(SLBM) 실험 장면을 공개한 것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이 수소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수소폭탄의 원료인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쉽게 추출되지만 또 다른 원료인 삼중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중수소나 리튬에 중성자를 조사(照射)해야 하는데 이는 어려운 과정이지만 원자로 가동을 통해 가능합니다.
북한에는 이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IRT-2000 연구로와 영변의 원자로가 있는데, 특히 2013년 8월에 재가동한 영변 원자로는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즉 북한이 이미 플루토늄탄을 만들어 실험까지 했고 우라늄 자원과 농축시설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플루토늄의 추가생산을 위해 이 원자로를 재가동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이렇듯 더욱 무서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광분하는 북한에 대해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엔안보리가 열리고 미국과 중국이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핵외교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의 국방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동맹차원에서의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합니다. 이렇듯 한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이 가져올 후유증에 대해 크게 고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북한의 기습적인 핵실험이 가져온 일련의 사태로 인하여 남북관계의 급랭이 불가피해지고 남북대화도 어려울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5월의 제7차 당대회에서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더라도 울림을 수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확대, 개성공단 3통 개선,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위한 남북대화도 무기 연기될 것이며 오히려 그 이전에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북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제 곧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가 채택되고 더욱 강력한 대북제제가 실시될 것인데 이는 북한에게 있어 더욱 깊은 고립과 주민 고통의 가중을 의미합니다. 세계는 북한 당국에게 이것이 진정 북한이 원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번 핵실험은 북한의 험난한 앞날들을 예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