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벽두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을 제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것으로 새해 업무를 개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소니픽쳐스사에 대한 해킹 사건이 터졌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해킹을 저지른 세력을 밝혀내 비례적인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이어서 12월 19일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은 북한정부를 해킹의 배후로 지목하는 결론을 발표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북한의 정찰총국, 광업개발공사, 단군무역회사 등 3개 단체와 정찰총국 및 노동당의 간부 10명에 대한 금융제재를 핵심으로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즉, 북한의 노동당과 정찰총국을 해킹의 배후로 지목한 것입니다. 행정명령의 대상이 된 단체와 인물은 미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일체 차단되며, 미국 국민과의 모든 거래가 금지됩니다.
이렇듯 오바마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해킹 사건과 관련하여 대북 제재조치를 취한 것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북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해킹수사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필요시 증거제시까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자 최강의 사이버 선진국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미국이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해킹 사건이 초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조치는 북한이 벌이는 사이버도발을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며, 때문에 외신들은 이번 조치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1987년 대한항공 폭파 사건 직후인 1988년 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었고, 2007년 북한이 2.13 합의에 서명하고 2008년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것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리비아, 이라크, 남예멘 등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적이 있으며, 지금도 쿠바, 이란, 수단, 시리아 등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쿠바는 미국과의 수교를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조만간 해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행정명령이나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추가제재 효과를 나타낼 여지는 많지 않은데, 이는 북한이 이미 다양한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적성국교역법, 해외자산통제규정, 수출통제법, 통상법, 국제무기거래규정, 수출입은행법 등을 통해 북한과의 수출입 금지, 대북 민간투자 제한, 미국내 북한자산 동결, 지원원조 금지, 국제금융기관의 대북지원 제한, 무기 및 군수산업 물자 수출입금지 등의 조치들을 취해왔으며, 2005년 아시아방코델타(ABD) 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할 때에는 애국법을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북한은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로 인하여 5개의 안보리 결의안에 의해 포괄적인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이 결의안들에 의해 무기판매 금지, 이중용도 품목 수출통제, 원조금지, 금융지원 차단 등의 제재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듯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이며 핵무기 개발, 미사일 개발, 무력도발 등 불안정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유례없이 강력하고 종합적인 국제제재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때문에 미국이 이번에 취한 행정명령이나 향후 취할 수도 있는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추가적인 제제효과를 가질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사이버도발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발한 것이며, 그 연장선에서 인권문제, 핵문제 등에 있어서도 북한의 고삐를 조여가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눈들이 해킹 사건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