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은 민족의 명절인 설날입니다만, 남과 북에 흩어진 이산가족들에게는 쓸쓸한 설 명절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는 작은 숫자이지만 그래도 170명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기에 이산가족들은 약간의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었지만, 올해는 그마저 없어 무척이나 허전한 명절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산가족이란 이산가족법에 규정된 8촌 이내 친척 또는 전 현 배우자를 말하는데, 1988년 이래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은 모두 13만 명이었지만, 그 중 절반은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닙니다. 매년 3,800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어 이제 남은 숫자는 7만 명도 되지 않습니다. 내용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부부상봉, 부모자식 상봉, 형제상봉 신청자는 줄어들고 3, 4촌 상봉 신청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절반이상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입니다. 상봉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평균연령이 80세라는 뜻입니다.
한국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확대하고 정례화하기 위해 북한에게 이런저런 제안을 했지만, 북한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 설을 전후한 시점에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려 했던 한국정부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과 북은 2014년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제19차 상봉 이후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는 가운데 북한은 5.24 조치의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어 가장 인도주의적인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 건마저 남북 간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이 이산가족들의 애환을 담아내면서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흥남철수 작전을 통해 남쪽으로 내려온 한 피난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기습적으로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사흘 만인 6월 28일 서울을 점령했고 한달 만에 낙동강 이남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남한전역을 손에 넣게 됩니다.
하지만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역전됩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을 제압하고 38선을 넘어 북진을 하게 됩니다. 이에 김일성 정권은 풍전등화의 운명을 맞이했지만, 중국군의 대량참전으로 전세는 또 다시 역전되고 맙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국군을 감당하지 못하고 철수하게 되는데, 그것이 흥남 철수작전이었습니다. 흥남 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15일에서 24일까지 수행되었는데 미 제10군단, 미 해병 1사단, 한국군 1군단, 8사단 등 군인 10만 명과 피난민 10만 명, 군수품 35만 톤, 차량 17,000대 등이 이 작전을 통해 남쪽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흥남 철수작전시 맨 마지막에 흥남항을 출항한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과 레너드 라루 선장은 한국인들의 애절한 호소를 받아들여 선적했던 무기를 다시 내리고 대신 피난민 1만 5천 명을 태우고 남쪽으로 철수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윤덕수는 눈보라기 휘몰아치는 흥남항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들과 함께 피난선을 타지만, 빅토리호에 오르다가 등에 매달린 여동생을 놓치고 맙니다. 이를 안 아버지는 다시 어린 딸을 찾으려 배에서 내려가지만 그것으로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후 윤덕수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는 힘든 삶을 살았고 돈을 벌기 위해 독일광부로 그리고 베트남전의 운송회사원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는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벌어지는데, 이때 흥남 부두에서 잃어버렸던 여동생이 어느 미군병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입양되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부산의 가족들과 미국의 딸이 상봉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피눈물로 점철된 윤덕수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이들이 겪은 이산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함께 울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5.24 조치는 2010년 한국해군의 함정인 천안함에 대한 북한군의 무자비한 도발에 대한 대북제재 조치입니다. 5.24 조치로 인하여 남북간 교역과 투자가 중단되어 있지만, 한국정부는 북한이 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이 조치를 해제할 수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밝혀왔습니다.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5.24 조치 해제를 연계시키겠다는 북한의 발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북한은 도발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5.24 조치의 해제를 끌어낼 수 있으며,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정치군사적 사안들과 무관하게 말 그대로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북한의 지도자들도 영화 ‘국제시장’을 한번씩 관람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