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msday Clock, 즉 지구종말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은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맨하탄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착수하여 최초로 세 개의 원자탄을 만들었고 그 중 두 개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함으로써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무기가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궁극무기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 과학자들 중 일단은 1947년 핵문제의 위험성을 다루는 회보를 발간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유명한 핵관련 저널인 Bulletin of Atomic Scientists라는 학술지입니다. 이 저널은 1947년 표지에 지구종말시계를 등장시키고 시각을 11시 53분, 즉 자정 7분 전으로 표시했습니다. 자정이 되면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으로 설정하고 핵무기의 등장으로 그만큼 종말에 가까워졌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이후 지구종말시계는 핵문제의 기복에 따라 시간 표시를 바꾸어 왔는데 대체로 냉전시대가 열리면서 소련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했던 1950년대와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를 가장 위험했던 시기로 표시했습니다. 1952년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이어 1953년 소련이 수소폭탄을 실험했을 때 종말시계는 자정 3분 전을 가리켰고 미소 두 초강대국간 핵무기 경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4년에는 자정 2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63년 미국과 소련이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를 체결하여 대기권 핵실험을 전면 중단했을 때에는 자정 12분 전으로 늦추어 졌다가 1960년 프랑스에 이어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다시 자정 7분전으로 앞당겨졌습니다. 1972년 미국과 소련이 요격미사일 배치를 상호 제한하기로 한 AMB Treaty를 체결했을 때에는 다시 자정 12분전으로 늦추어졌습니다.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가 6만개를 넘어서고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이 핵실험 경쟁에 뛰어들면서 지구종말시계는 자정 3분 전으로 당겨졌지만, 1987년 미소가 중거리 핵무기를 폐기하는 INF Treaty를 체결하고 1991년 미소가 전략핵무기감축조약(START I)을 체결했을 때에는 자정 17분 전으로 늦추어졌습니다. 이 때가 지구종말시계가 지구가 가장 안전했던 시기로 평가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다시 악화일로였습니다.
소련연방이 해체된 이후 구소련으로부터 많은 핵물질이 세계 각지로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세계는 이것이 테러세력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가공할 핵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는 오랜 기간 동안 물밑에서 핵무기 개발 경쟁을 벌여오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한꺼번에 십여 회의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이에 따라 핵무기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습니다. 이와 함께 지구종말시계의 바늘도 자정 17분 전에서 14분 전으로 그리고는 다시 9분전으로 앞당겨졌습니다.
이후 2001년 9.11 사태가 발생하면서 핵테러에 대한 공포는 확산되었는데, 이에 따라 핵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조약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으며 2002년 핵안보정상회의가 창설되어 전 세계 정상들이 매2년마다 한자리에 모여 지구의 핵안보를 도모하기 위한 사상 최대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세계의 핵안보는 계속 악화되었으며, 주된 원인은 북한, 이란,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등이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시도하거나 의혹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라크와 리비아의 경우 독재자가 제거되면서 핵문제가 해결되었고 이란의 경우에도 실용주의자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서방과의 협상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네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다량의 화학무기와 생물무기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악화되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와 더불어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 테러 위험 등이 가세하면서 지구의 안전은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 지구종말시계는 자정 3분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북한의 무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종말시계의 바늘을 자정을 향해 움직이게 한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