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국 대학 졸업하는 남수단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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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충남대학교 졸업식장에는 검은 피부색을 가진 졸업생 한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프리카 남수단 출신으로 충남대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는 32세의 산티노 뎅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2010년에 암으로 작고한 한국인 신부 이태석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18세였던 2003년에 이태석 신부를 만났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처음으로 남수단에 들어갔을 때 현지어인 딩카어를 몰라 현지인들과 소통할 방법이 없어 힘들어했습니다. 그때 산티노 뎅은 영어와 딩카어를 이어주는 통역사로서 이태석 신부를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랬던 산티노 뎅은 이태석 신부의 지도 하에 공부를 했고, 이 신부가 설립한 장학재단의 도움을 받아 2011년 한국땅을 밞았습니다. 조국 남수단에 도로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한국에 와서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2013년 여주대 토목과에 입학했으며, 2015년 충남대로 편입하여 공부를 계속하여 2017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손에 쥐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되었으며, 이후 군의관으로 복무한 후 뜻한 바가 있어 다시 살레시오 수도회와 광주가톨릭대학교를 거쳐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의사가 가톨릭 신부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어린 시절을 무척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10남매를 키워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고 성당에서 혼자 오르간을 타면서 음악을 즐겼던 그는 그렇게 학교와 성당을 오가면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친지들에 의하면 초등학교 시절 그는 성당에서 보여준 성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보고 그와 같은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다미아노 성인으로 불리는 베스테르 신부는 하와이에서 문둥병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스스로 한센병에 걸려 1889년 사망했으며,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성되어 한센병 환자들의 수호신이 되신 분입니다. 의사에서 가톨릭 사제로 변신한 이 신부는 2010년 독립 후 내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남수단의 와랍주에 있는 톤즈라는 마을에 부임했고, 그곳에서 교육활동과 의료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와 병원들을 세우고 우물을 파면서 현지인들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켰으며, 다친 이들을 치료해주면서 몸이 부서지도록 신앙의 덕행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이 신부는 2008년 휴가차 한국에 와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청천벼락과 같은 통보를 받게 됩니다. 대장암 4기라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수단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식수가 없어 고생하는 남수단에 가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결코 병실에 누워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다른 성당들을 찾아가 남수단에 대한 봉사와 지원을 호소했고, 남수단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를 만류하느라 병원과 주변에서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2010년 1월 14일 새벽 5시 35분 이태석 신부는 “Everything is good”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47세를 일기로 선종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되었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사제로의 변신과 봉사생활 그리고 때이른 죽음을 모두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토록 숭고한 삶을 살다 간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영화 ‘울지마 톤즈’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이 신부의 고귀한 삶과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감명을 받고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 신부의 육신은 갔지만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족적은 너무나 컸습니다. 이 신부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남수단 현지에서는 그를 애도하는 행진이 이어졌고, 그로부터 치료를 받았던 사람, 공부를 배웠던 아이들, 의학공부를 배웠던 청년들은 하늘을 원망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한국의 KBS방송사는 그의 사망 직후 제1회 감동대상을 추서했고 2011년 한국정부는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그가 남긴 흔적들은 아직도 한국에 많습니다. 그로부터 의술을 배우던 남수단 청년 존 마인과 토마스 카반은 2010년 한국으로 유학하여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학 의과대학에서 수학 중입니다. 의사가 되어 조국에 봉사하라는 이 신부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산티노 뎅도 조국을 도우라고 했던 이 신부의 유언을 가슴에 담은 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것입니다. 이 신부가 어릴 적에 다녔던 부산의 성당 인근에는 그의 생가가 복원되어 사진, 유물, 영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원조를 받으면서 살았던 한국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을 통해 가난한 나라들에게 무상원조를 제공하고 해외자원봉사단을 파견하는 원조 제공국이 된 것은 분명 기적입니다.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한국이 낳은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