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천안함 폭침과 서울 재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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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면 기억나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사건은 바로 천안함 폭침입니다. 금년 3월 26일은 일곱 번째로 맞는 ‘서해수호의 날,’ 다시 말해 북한의 도발로 천안함이 침몰된지 일곱 해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2010년 3월 26일 저녁 9시 30분경이었습니다. 한국 해군의 1,200톤급 초계함인 천안함은 서해 백령도 남쪽에서 정상 운행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큰 굉음이 일어났고 천안함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면서 칠흑 같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승조원 104명 중 58명은 구조되었지만 40명은 전사하고 6명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북한 잠수함에 의한 어뢰 공격이 확실했지만, 한국정부는 50명의 민군 전문가들을 투입하여 진상조사에 나섰고, 보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4월 11일 호주, 미국, 스웨덴, 영국 등 4개국 전문가 24명이 가세한 합동조사단을 꾸려서 정밀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40일간 정밀조사를 마친 합동조사단은 5월 2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제조한 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수중폭발의 충격파로 절단된 선체 중앙부분은 위쪽으로 크게 휘어졌고, 절단면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북한어뢰에 사용되는 HMX, RDX, TNT 등의 폭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북한의 소형 잠수함들이 천안함 공격 2-3일 전에 기지를 이탈하여 공격 후에 복귀한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더욱 결정적인 증거는 발표 하루 전에 발견되었습니다. 증거물 수색에 함께 나섰던 저인망 어선들이 5월 19일 어뢰 후미의 추진동력부를 구성하는 프로펠러와 조종장치를 건져 올린 것인데, 북한이 해외에 무기를 팔기 위해 만든 홍보용 카탈로그에 있는 CHT-02D 어뢰사진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천안함을 공격한 무기가 북한의 연어급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임이 명백해진 것입니다. 5월 24일 한국정부는 남북간의 모든 교역을 단절하고 개성공단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를 동결하는 ‘5.24 조치’를 발표했고, 이 조치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7월 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천안함 도발은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했고, 이와 별개로 15개 나라들이 별도로 규탄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도발을 시인하기는커녕 “남한 정부가 일부러 천안함을 침몰시켜 북한과 연계시키려 한 특대형 날조극”이라는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한국군 내부와 전문가 사이에서 도발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북한의 함정이나 화물선을 침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한국정부는 이번에도 인내를 택했습니다. 결국 북한의 천안함 도발은 천안함 승조원 46명, 수색작업 중 잠수병으로 사망한 한주호 준위, 수색작업에 동참했다가 선박 사고로 숨진 어민 9명 등 도합 56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3월 26일이 되면 전사장병들이 영면한 대전현충원에서는 졸지에 생때같은 남편들과 금쪽같은 아들들을 잃은 유족들의 통곡소리와 함께 이들을 추모하는 ‘서해수호의 날’ 행사가 거행되는 것입니다.

3월이 되면 생각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1951년 3월 15일은 두 번째로 서울을 수복한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참전과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고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했지만 100만 명의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오면서 후퇴해야 했고, 결국 1951년 1월 4일 수도 서울을 중공군에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1.4후퇴’였습니다. 그러나 한국군과 유엔군은 평택-삼척 선에서 후퇴를 멈추고 반격에 나섰고, 맥아더 총사령관과 리지웨이 미8군 사령관은 ‘울프하운드 작전(Operation Wolfhound)’를 기점으로 총반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군과 유엔군은 1951년 2월 10일 다시 한강 남단에 도달했고, 3월 15일 중공군을 몰아내고 수도 서울을 재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듯 북한의 도발은 번번히 한반도의 평화를 유린했고, 천안함 폭침 사건은 새털처럼 많은 도발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 이후에도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2014년 10월 10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시비한 연천 지역 포격 도발, 2015년 8월 4일 서부전선 DMZ 구역의 목함지뢰 도발 등을 저질렀으며, 그러는 중에 핵실험, 미사일 시험발사, 사이버 도발 등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북간 항구적 평화정착이란 아직도 기약할 수 없는 미래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