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가 향년 98세로 타계했습니다. 이 총리는 30여 년간 재직하면서 싱가포르를 이끌어온 정치지도자이자 싱가포르를 선진경제국의 일원으로 탈바꿈시킨 불세출의 개혁가였습니다. 싱가포르 공화국은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섬나라로서 서울만한 크기인 716km²의 면적에 55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조그마한 도시국가입니다.
싱가포르는 원래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개발한 소항구였지만, 1963년에는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식민통치에서 벗어났고, 이어서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분리 독립한 나라입니다. 독립당시 싱가포르는 인구 160만 명의 보잘것 없는 어촌에 불과했고, 손바닥한 만한 국토에 아무런 자원도 가지지 못한 버려진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싱가포르는 GDP 규모가 3,000억 달러에 이르러 500배의 국토면적을 가진 옛 종주국 말레이시아의 GDP 규모와 비슷한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의 기적을 이끌어낸 싱가포르의 국부였습니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치안질서와 교육제도를 자랑하며, 싱가포르 항구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가 되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세계 3위의 정유산업국이자 세계 4위의 금융산업국이기도 합니다. 싱가포르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가 넘어 구매력지수(PPP)로는 일인당 6만 달러에 달하며, 1인당 외환보유고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이렇듯 싱가포르는 리콴유 총리가 주도한 ‘위로부터의 개혁, 즉 top-down 개혁’을 통해 경제기적을 이루어냈고, 리 총리가 모든 싱가포르 국민으로부터 ‘국부(國父)’로 존경받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 주석이 생전에 늘 “중국은 싱가포르의 경험을 배워야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늘마저 리 총리의 타계를 슬퍼했던지 장례식이 열리던 3월 29일에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리 총리의 운구행렬이 지나는 연도에는 150만 명에 달하는 싱가포르 국민들은 장대비를 맞으면서 마지막 길을 떠나는 리 총리를 배웅했습니다. 이들 모두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우리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고인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물론, 정치지도자가 스스로 선각자가 되어 위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었던 사례는 리콴유 총리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총리도 탁월한 개혁가였습니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제4대 총리로 1981년부터 23년간 재직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배우자는 의미인 Look East Policy를 실천하여 말레이시아를 신흥중진국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미얀마의 테인 세인 대통령도 비슷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총리를 지내고 2011년 의회선거를 통해 미얀마 연방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군 고위장성 출신이면서도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개혁개방을 주도하면서 50년 동안 왜곡되고 정체된 국가구조와 기능을 정상화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리콴유, 마하티르, 테인 세인 등 개혁정치가들 대부분이 독재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민을 잘 살게 만들기 위해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공(功)이 과(過)를 압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분단의 세월을 살고 있는 한국민들은 북한에서도 유사한 개혁열풍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도층이 자각하여 핵무기를 손에 들고 ‘폐쇄와 고립’을 고수하고 있는 현재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주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작한다면 온 세계로부터 찬사와 지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리콴유 총리를 떠나 보내면서 그가 생전에 이룩했던 개혁, 국민의 대부분이 중국 남부의 광둥성과 푸젠성을 떠나온 문맹(文盲)과 빈농(貧農)의 후예들이었던 싱가포르를 지구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진 일류사회로 탈바꿈시킨 그의 업적이 북한 지도자들에게도 큰 시사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