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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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2일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의 개정이 타결되었습니다. 4년 6개월 동안 진행되어 온 협상이 마무리되어 한미 간에 새로운 내용의 원자력협정이 발효될 것이며, 이로써 한국은 다시 한번 핵무기 비보유국 지위를 준수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농축과 재처리는 원자력산업에 있어 핵심적인 공정입니다. 농축시설이 있어야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는 핵연료를 생산할 수 있고, 재처리시설이 있어야 타고난 핵연료, 즉 사용 후 핵연료를 분해하여 각종 자원들을 재활용하며 남는 방사능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수 있습니다. 농축과 재처리는 핵무기를 생산함에 있어서도 핵심공정입니다. 농축을 통해 핵무기의 원료인 고농축우라늄을 얻을 수 있고 재처리를 통해 역시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생산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되던 1991년 한국은 농축과 재처리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비핵화선언을 했는데, 이는 한반도의 핵평화를 담보하기 위해 평화용 농축과 재처리마저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어서 그해 12월에는 남북이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남과 북이 핵무기를 만드는 길목에 있는 두 공정을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한반도를 핵무기 없는 지역으로 남게 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 공동선언을 위배하고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 핵무기를 만들어 핵실험까지 강행했으며, 지금은 농축을 통한 우라늄 핵무기의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한국도 농축과 재처리를 강행하여 핵무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으며, 일단 한반도 비핵화 선언부터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산업계의 불만은 더욱 컸습니다. 한국은 원전 24기를 운용하는 세계 제6위의 원전국이지만 농축과 재처리를 포기한 상태이어서 핵연료를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있고, 매년 700톤씩 쏟아져 나오는 폐연료를 임시저장고에 담아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2017년 경이 되면 임시저장고마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어, 원자력산업계에서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를 위한 재처리 시설을 줄기차게 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한편, 1956년 최초로 서명되고 1974년에 개정되었던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은 양국간 원자력협력을 위한 협정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억제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협정은 미국이 한국에게 연구용 원자로 제공 등 협력을 제공하는 토대가 되었지만, 동시에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않도록 제약하는 장치로 작동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핵무기 포기를 위한 핵투명성을 철저하게 제공해왔기 때문에 합법적인 평화적 핵이용 부분에서 지나친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타결된 개정안에서는 한국의 이러한 입장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습니다. 제3국에 대한 원전 수출이나 평화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에 있어서 양국 간 동의절차를 크게 간소화시켰고, 건식재처리(Pyroprocessing)에 대한 공동연구에 합의했으며, 농축도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위해서는 양국이 계속 협의해나가기로 했습니다. 협정의 유효기간도 종전의 40년에서 20년으로 줄였습니다. 이로써 한미 양국은 한국의 경제적 기술적 성장을 반영하는 좀 더 현실적인 원자력협력협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국이 여전히 재처리 및 농축활동을 보류했다는 점입니다. 핵주권을 주장하는 한국의 전문가들과 원자력 산업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농축 및 재처리 활동을 보류하기로 한 것은 당연히 한반도의 핵평화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남북한 비핵화공동선언을 사문화시키고 핵무장의 길을 치닫고 있는 북한이 느껴야 할 점들이 많을 것입니다. 북한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술적 기반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계 핵질서에 순응하고자 노력하는 한국에게 북한이 계속해서 핵위협을 가한다면 언젠가는 자충수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