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5월 9일 러시아의 제70주년 전승기념행사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참석하지 않고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 외교부가 김정은 제1비서를 동 행사에 초청한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 김 제1비서의 러시아 방문이 확실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방문 취소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배경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이런저런 시각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 북한이 러시아에게 경제원조와 함께 전투기를 포함한 첨단 무기들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러시아가 들어주지 않아서 김 제1비서의 러시아 방문 명분이 없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 간의 밀월관계를 감안한다면 북한이 그런 요청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이런 분석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둘째, 북한이 요구하는 특별의전을 러시아가 수락하지 않아서 방문이 취소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 제1비서의 첫 해외 나들이인 만큼 신변안전과 의전에 각별한 신경을 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에 푸틴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포함한 이런저런 특별 경호와 의전을 요구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사 주최국인 러시아로서는 50여개 국의 정상들을 맞이해야 하므로 북한에게만 특별한 의전을 제공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셋째, 러시아 행사는 김정은 제1비서에게는 첫 정상외교 기회인데 김 비서의 젊은 나이와 짧은 경륜을 감안할 때 북한 당국이 수십 명의 정상들이 모이는 다자 정상외교 무대를 부담스럽게 느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런 무대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스타일이라도 구긴다면 국내정치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북한으로서는 러시아 방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격식을 갖춘 북중 정상회담을 가지기를 희망했을 수 있으며, 이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방문을 취소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이 가장 절실한 외교과제일 수 밖에 없기에 이 또한 설득력을 가지는 분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제1비서의 집권 3년이 넘도록 북중 정상 간의 만남이 없다는 사실을 초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 최근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공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러시아 쪽에서 소리를 내면서 실은 중국의 문을 열고 싶어하는 북한식 성동격서(聲東擊西) 외교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김정은 체제의 착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고 권력자가 자리를 비우는 것을 매우 민감하게 생각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김 제1비서가 외형적으로는 공포정치를 통해 당과 군의 원로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권력의 안정성과 관련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분석일 뿐 김정은 제1비서가 러시아 방문을 취소한 실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남아 있습니다.
아쉬움도 있습니다. 많은 한국 국민은 김정은 제1비서가 러시아 방문을 통해 스스로를 세계무대에 알리고 이것이 북한의 합리적인 정책과 개혁개방을 예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지난 4월 말에는 한국 정부가 5년 만에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지원을 승인하고 남북간 교류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해서 한국사회에서는 김정은 제1비서의 러시아 방문이 남북러 3국 간의 경제협력의 물꼬를 터고 그것이 남북간 교류협력에도 순기능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기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김정은 제1비서의 방러 취소는 궁금증과 함께 아쉬움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