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대통령의 54년 만의 이란 방문

0:00 / 0:00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일부터 3일까지 이란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2박 3일간의 일정을 통해 박 대통령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과 회담을 가졌으며, 문화행사 참석, 이란 국립박물관 관람,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 참석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이란 방문은 통상적인 해외순방과는 달리 여러가지 맥락에서 큰 의미를 가진 특별한 행사였습니다.

첫째, 이번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양국이 수교한 지 무려 54년 만에 실현된 역사적인 정상 간의 만남이었습니다. 1962년 양국이 수교할 당시 한국은 막 경제성장을 시작하는 상황이었고 이란은 중동 최대의 국가이자 석유부국이었습니다. 양국 간의 교류협력은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1977년에는 서울에 테헤란로가 지정되고 테헤란에는 서울로라는 길이 생겼으며, 1978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팔레비 국왕의 초청을 받아 이란 방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진행된 녹록치 못했던 역사는 양국 정상의 만남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979년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고 이란에서는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필레비 국왕이 축줄되었습니다. 이란의 혁명정부는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했고 이어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7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북한이 이란을 지원하면서 이란은 북한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이후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면서 핵 및 미사일 기술과 관련한 북한-이란 간의 협력은 더욱 긴밀해졌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의 역사로 인하여 한국과 이란 간의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이 2015년 핵개발 포기에 합의하고 2016년 국제사회가 대이란 제재를 해제함에 따라 양국 간의 교류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양국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본격적인 교류협력을 열어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둘째, 굴지의 석유부국인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선택함에 따라 경제붐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것이 한국에게는 경제재도약을 위한 소중한 기회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란은 지난 36년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석유수출이 급감하고 천정부지의 물가인상, 리알화 환율 인상, 높은 실업률 등에 시달렸지만, 이제 조만간 하루 250만 배럴이상의 석유수출을 회복할 것이며, 무역, 에너지, 건설, 수자원 개발, 보건의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전망을 반영하듯 이번 박대통령의 이란 방문에는 230명이라는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했습니다. 양국간 정상회담에서는 모두 65건의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는데 금액으로 따지면 약 460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양국 대통령은 향후 5년 이내에 교역규모를 30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는데 두 나라가 가진 경제력이나 잠재력을 감안하면 이를 실천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 대통령을 수행한 경제사절단은 5월 2일 이란 측 기업들과 비지니스 상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904건의 상담이 이루어지고 즉석에서 31건의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모든 공식 일정에서 이란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루사리를 착용하여 친근감을 과시했으며 문화공감 공연, 태권도 시범 공연, K-팝 전시회 등에도 참석했습니다. 모두가 양국간 본격적인 문화교류를 예고하는 행사들이었습니다.

셋째, 핵문제와 관련하여 양국이 의견 일치를 확인한 것은 이번 정상외교가 거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이란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방세계의 제재를 감수하면서 핵무기 프로그램들을 추진했지만 2013년 온건중도론자이자 실용주의자인 로하니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적극적으로 핵협상에 나서 마침내 대타협을 이루었습니다. 이렇듯 달라진 이란의 핵관련 입장은 정상회담에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의 핵개발은 우리 민족에 대한 위협이며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지적했고 로하니 대통령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핵활동에도 반대하며 중동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로 화답했습니다. 핵문제 타결 이전까지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이란이 핵을 포기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오면서 북핵에 반대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방한 것이며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란의 핵문제 해결방식을 다시 한번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란은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평화적 핵활동은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도록 보장을 받았고 자국에 대한 모든 경제외교 제재를 해제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도 이끌어냈습니다. 말하자면 국가 자존심을 지키면서 국제사회와의 타협을 수용한 것인데 이는 북한이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는 핵해결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핵개발을 고수하면서 주민들을 고립과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북한당국은 이란의 현명한 변신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