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29일 서울에서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회의 및 제10차 국제철도 물류회의가 열렸습니다. OSJD, 즉 국제철도협력기구란 러시아, 중국, 몽골, 북한 등 아시아 국가와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하는 27개 나라들이 철도협력을 위해 1956년에 설립한 국제기구입니다.
한국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구상 중인 남북한 연결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중국횡단철도(TCR)와의 연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중요한 국제기구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003년 이 기구에의 가입을 추진했으나 북한의 반대 등으로 실패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국영철도회사인 코레일은 제휴회원 자격으로 참가해왔고, 최근에 다시 한국의 정회원 가입 건을 정식의제로 삼아 줄 것을 요청하여 조만간 OSJD 장관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입니다.
코레일의 최연혜 사장은 이를 위해 작년 4월 평양에서 열린 OSJD 사장단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평양 회의에서 최 사장은 2015년 물류회의와 2019년 사장단회의의 서울 유치를 제안했고, OSJD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번에 서울에서 사장단회의와 물류회의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번 서울 회의에서 각국 철도공사의 대표들은 유라시아 철도협력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발표했고, 시속 300km를 자랑하는 한국의 고속철인 KTX를 시승하기도 했습니다. 회의는 마지막 날 유라시아 철도와 남북한 철도의 연결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서울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폐회되었습니다. 이 선언으로 OSJD 회원국 모두가 남북간 철도연결이 남북한 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철도의 일부로서 유라시아의 번영에 긴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유라시아 연결사업을 구상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2014년 한국정부는 보다 구체적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로드맵을 내놓았습니다. 한국의 해양수산부가 제시한 이 계획은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13개국을 포괄하는 유라시아 신물류루트를 건설하고 철도, 통신, 에너지 등 3대 중점과제와 65개 세부과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에는 남북과 러시아가 협력하여 공동제조업과 농수산가공업을 발전시켜 중국시장에 공급하는 ‘남북러 3각 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포함되어 있으며,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활성화 계획과 하바로프스크나 대우수리섬을 중심으로 하는 훈춘 국제물류단지 계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에 연결하는 유라시아 철도 3단계 구상이 계획의 핵심입니다.
최근 남북러 3국 사이에는 이와 관련한 약간의 진전도 있었습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제1차 사업으로 2014년 11월에 러시아산 유연탄 4만5천 톤을 하산에서 나진항까지 54km를 철도로 운송한 후 나진에서 중국선박을 이용하여 포항까지 운송하여 포항제철에 공급하는 시범운송이 성공리에 실시된 것입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이 사업을 승인해주었고 한국정부도 5.24 대북조치의 예외로 인정해주었던 것입니다.
세 나라가 협력하기만 한다면 남북러 가스관 사업도 매우 유망한 사업입니다. 세계 1위의 천연가스 보유국인 러시아의 산업에너지부는 지난 2007년 Eastern Gas Program(동북아 가스판매 계획, 300억 달러 소요)을 통해 동시베리아 가스전에서 가스관으로 아시아국들에게 가스를 판매하는 계획을 밝힌 적이 있는데, 이듬해인 2008년 한국과 러시아는 연간 750만 톤(30~50억 달러)의 가스를 한국에 공급하는 문제를 협의하기도 했습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사할린 가스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한국에 공급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거부한다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액화가스(LNG)로 바꾸어 선박으로 운송해야 하는데, 이보다는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이 훨씬 더 경제적입니다. 러시아는 액화가스 공장을 건설하지 않아도 되고 북한은 가스관 통과료를 받을 수 있으며 한국에게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남북한 평화와 교류협력이 정착되지 못해 이런 구상들이 여전히 구상으로 머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실현되면 남북 모두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정착에도 크게 기여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장장 9289km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입니다. 이 철도가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 등의 철도망과 연결되고 이것이 한반도를 종단하여 부산까지 이어진다면 모두가 그리던 실크로드익스프레스(SRX)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 나진 등 극동지역의 항만개발, 남북한을 잇는 물류사업, 몽골의 자원개발, 시베리아 석유가스 개발, 전력망 및 가스관 송유관 연결사업, 중국 세일가스 개발 등 번영을 가져다 줄 다양한 사업들이 추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관건은 지금까지 한국의 OSJD 가입에 반대해온 북한이 발상을 전환하고 협력적인 자세로 나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