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미국 의회에서는 참으로 특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제시장’이라는 한국의 상업영화가 사상 처음으로 미국 의회에서 상영되어 관람했던 미 의원들에게 큰 감명을 준 사건입니다. 이 영화는 6.25 전쟁 중에 흥남에서 남쪽으로 피란했던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에서 피난민을 태웠던 미 해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1950년 6월 25일 기습적인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한국군을 일사천리로 밀어 부쳐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지만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힙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10월 1일 38선을 통과하여 10월 19일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도달하여 통일을 목전에 두게 되지만 30만 명의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 개입하면서 전세는 다시 한번 뒤바뀌게 됩니다. 중공군의 압도적 수적 우세에 밀려 한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게 되고 1950년 1월 4일 서울은 다시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무렵 흥남부두에는 퇴로를 차단당해 고립된 한국군 제1군단과 미군 제10군단의 장병 10만 명과 군수물자 35만톤을 철수시키기 위한 선박들이 바다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두에는 이 선박들을 타고 남쪽으로 가기를 원하는 10만 명의 피난민이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화물을 싣고 있던 빅토리아호는 화물선으로서 승선정원은 60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백일 1군단장과 10군단 소속의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 박사는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에게 피난민을 태워달라고 애원했고, 알몬드 장군이 이를 수락하여 빅토리아호는 실었던 무기들을 모두 내리고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태워 철수에 성공함으로써, 후일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어린 소년이었던 윤덕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러 아비규환의 흥남부두에서 빅토리아호에 오르는데 성공했지만, 북새통 중에 업고 있던 막내 여동생을 놓치고 맙니다. 아버지는 막내딸을 찾기 위해 다시 배에서 내려가지만, 이것이 아버지와 여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 되고 맙니다.
이후 거제도를 거쳐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윤덕수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책임진 가장으로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독일탄광에 가게 되고 귀국해서는 또 다시 베트남으로 가서 부상까지 당하게 됩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관객들은 윤덕수의 힘든 인생과정을 지켜보면서 전쟁과 눈물로 얼룩진 한국의 현대사를 회상했으며, 흥남부두에서 오빠의 손을 놓쳐 미아가 되었던 막내 여동생이 미국병사에 의해 구출되어 미국에서 성인으로 성장하여 꿈에 그리던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극장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뜨거운 공감과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 영화 ‘국제시장’은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후 6개월 만에 관람객 1천 5백만 명을 기록하여 각종 영화상을 수상하는 화제작이 되었습니다.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가 미국 의회에서 상영된 것이며, 앞으로도 미국의 대도시들을 돌며 상영회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날 미국 의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미국 의원들, 한국전 참전 노병들, 의회 보좌진들, 한인단체 관계자들, 언론인 등 300여 명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6.25 전쟁 참전용사인 민주당 찰스 랭글 의원과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의 에드 로이스 의원도 있었으며, 빅토리아호의 선원으로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세 사람 중의 하나인 로버트 러니 전 해군 제독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영화를 관람한 후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공감했다면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습니다. 88세의 노인이 되어버린 로버트 러니 제독은 “항공기 연료로 가득 찬 배 위에 1만4천여 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기뢰로 가득 찬 겨울 바다를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의 섭리였다고 밖에 할 수 없다”면서 회한에 잠긴 채 눈보라가 치던 흥남부두를 회상했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은 진정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겪은 나라이며, 이 역사는 이 시대를 사는 국민의 뇌리 속에 잊혀질 수 없는 역사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피난민들이 도착했던 거제도에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는 10만 명의 인명을 구한 여섯 명 영웅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극을 불러일으킨 자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분단의 아픔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아픈 역사가 청산되고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