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미국인 청년 오토 윔비어가 사망했습니다. 버지니아대 3학년에 재학중이던 윔비어는 2016년 1월 관광차 북한을 방문했다가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북한의 정치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억류되었습니다. 이후 북한은 미국의 면담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다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에 미 국무부의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국장을 만나 윔비어의 석방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어서 6월 12일 조셉 윤은 직접 평양을 방문하여 윔비어를 데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윔비어는 혼수상태였습니다. 윔비어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깨어나지 못했고, 6월 19일, 그러니까 17개월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고향 신시내티에 돌아온 지 6일 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윔비어의 장례식은 6월 22일 그의 모교인 신시내티 와이오밍 고교에서 엄수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조문객과 추모 리본 그리고 성조기의 행렬이 이어진 가운데 조문객들은 윔비어의 어이없는 죽음에 한결같이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윔비어의 아버지는 아들이 북한에서 구타를 당하고 짐승취급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도 미 고위관리를 인용하면서 윔비어가 반복적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윔비어의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6월 23일 오후 서울의 광화문에서는 애국단체시민연합, 국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이 추모식을 거행했고, 탈북민들이 단상에 올라와 북한의 인권 참상을 알리는 토크쇼를 진행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들끓고 있습니다. 그 동안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미국 시민들이 격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정성을 다해 윔비어를 치료했다고 주장했지만, 인권유린 사태가 다반사로 발생하는 북한, 이런 저런 구실로 외국인들을 붙잡아 놓고 인질외교를 벌여온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믿을 미국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백악관, 의회, 언론 등이 격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잔혹한 집단으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더욱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고 했고, 의회는 “적대 정권이 미국시민을 살해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방송토론에 나온 패널리스트들은 북한에 대한 선제 군사공격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인질외교에 대한 세계의 비난도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9년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다가 북한에 들어간 미국의 여기자 로라 링과 리승윤을 억류하고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는데, 미국은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내야 했습니다. 2009년 12월에는 북한의 인권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입북했던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도 비슷한 처지에 빠졌지만, 북한은 로버트 박이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했기 때문에 관대하게 용서한다는 선전과 함께 억류 42일만에 풀어주었습니다. 로버트 박은 미국에 돌아와 정신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북한은 2010년 초 미국인 선교사 말리 곰즈 씨를 억류하고 8년의 노동교화형과 북한돈 7천만 원(8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세계기독교연대(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 등 기독교 단체들이 곰즈 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가운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8월 27일 방북하여 억류 8개월 만에 곰즈 씨를 데리고 나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중국에서 기독교인 관광객을 방북시키는 선교관광업체를 운영하던 케네스 배 씨의 경우, 2012년 11월 3일 18번째의 방북때 북한당국은 컴퓨터 외장 하드에 담긴 북한내 실상 관련 자료들을 문제삼았고 배 씨를 국가전복음모죄로 기소하여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배 씨는 2년간 억류된 후 2014년 11월 8일 오바마 대통령이 보낸 특사 제임스 클래퍼 미 정보국(DNI) 국장의 방북으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김정남 암살 사건 조차 인질외교를 통해 해결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은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범들이 사용한 맹독성 화학제에 의해 피살되었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용의자로 지목된 북한 대사관 직원 등 북한인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평양정부는 북한에 체류 중이던 말레이시아 국민을 인질로 잡았고, 결국 용의자로 지목된 북한인들을 귀국시키고 김정남의 시신도 북한으로 송환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는 북한의 이런 인질외교에 신물을 내고 있으며, 이제는 인권 차원에서 유엔 안보리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유엔은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1년간의 조사활동을 바탕으로 작성하여 2014년 3월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는 “북한에서 체계적이고(systematic) 광범위하며(widespread) 중대한(grave)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2016년 말에도 유엔총회는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가 있습니다. 이렇듯, 국내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북한당국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정권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기 위해서는 유엔의 가장 강력한 기구인 안보리가 나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이제는 중국과 러시아도 인권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존중되어야 할 인류보편적 가치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외국인을 납치하거나 억류하여 세계를 노리개 감으로 삼는 북한식 인질외교는 더 이상 허용되어서 안됩니다. 그것이 웜비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