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미국과 베트남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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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 백악관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응웬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수교 20주년을 앞두고 양국관계 증진을 위한 방안들을 논의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가원수가 아닌 인사를 자신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만나는 것은 외교적 파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산당 서기장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쫑 서기장은 베트남의 공산당 일당체제를 이끄는 최고 실세이지만 공식 정부직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만남은 미국이 베트남과의 화해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베트남은 과거 전쟁을 치렀던 불구대천의 원수였지만 최근 양국관계는 혁명적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1964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1973년 파리 평화협정으로 철수할 때까지 5만 8천 명의 전사자와 75만 2천 명의 부상자를 기록했습니다. 월남군의 전상자도 70만 명에 이르렀으며, 공산 월맹군은 1백만 명이 넘는 전상자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도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연인원 32만 명을 파병하여 5천 명의 전사자를 기록했습니다.

미군 철수 2년 후인 1975년 월맹군이 월남을 점령함에 따라 베트남은 통일되고, 공산베트남과 미국은 깊은 단절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20년 만인 1995년 양국은 다시 수교를 하게 되고, 5년 후인 2000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합니다. 개혁개방의 길을 택한 베트남은 급속도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어 갔습니다. 2006년에는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하노이를 방문하여 팜반트라 베트남 국방장관과 회담하여 종전 31년 만에 전면 군사협력에 합의하게 되고, 2012년에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2014년 3월에는 마틴 템프시 미 합참의장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무기금수를 해제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며, 이어서 같은 해 10월 팜반민 베트남 외무장관의 워싱턴 방문을 계기로 미국은 무기수출 금지조치를 상당부분 해제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베트남군 장교들에 대한 군사훈련, 베트남전 동안 실종된 미군 유해의 발굴을 위한 기술지원, 고엽제 피해 보상 등에 합의했으며, 양국은 대테러 공조에도 합의했습니다. 베트남은 중국의 팽창주의적 해양정책을 경계하고 있으며, 중국이 베트남과 인접한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건설하고 석유 시추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긴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요인이 미국과 베트남 간의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대한민국과 베트남 간의 관계도 혁명적인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로 단절되었던 두 나라 관계는 1992년 재수교 이후 활발한 경제적·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간의 무역은 연 200억 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베트남은 한국에게 있어 제6위의 수출대상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은 400억 달러에 이르는 베트남 투자를 기록하여 베트남에게 있어 최대의 투자국이 되었는데, 현재 약 4천 개의 한국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제조업, 물류업, 호텔 요식업, 건설, 교육, 행정지원, 농수산업, 기술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여 왕성한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 베트남 그리고 한국과 베트남이 화해협력의 길을 택하고 있는데도, 동족인 남북한이 여전히 깊은 단절 속에서 상호 대립하고 있음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이 과거의 적국이었던 이란, 쿠바, 미얀마 등과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중에 북한은 조만간 미국과 수교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될 전망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쫑 서기장은 베트남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문제, 양국간 안보협력, 남중국해 해양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베트남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진솔한 대화가 있었다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과 쫑 서기장의 백악관 회담에 맞추어 미국 상하원 의원 20여 명이 백악관에 서신을 보내 베트남의 인권개선을 촉구하고 베트남 정부가 구금중인 정치범과 언론인 그리고 인권 운동가들을 석방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베트남은 인권 문제들에 대해 경청할 만큼 성숙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북한과도 이런 대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