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까지 1129일 동안 전개되었던 6.25 전쟁은 미소 냉전의 서막을 알린 전쟁이기도 했지만 한민족에게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 참극이었습니다. 한국은 이 전쟁을 ‘6.25 전쟁’으로 명명하고 있지만, 북한은 ‘조선전쟁’ 또는 ‘조국해방전쟁’으로 그리고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즉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했던 전쟁으로 부릅니다. 정전 후 학계에서는 6.25전쟁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한 활발한 연구가 수행되었는데 크게 두 가지 이론으로 대별되었습니다.
첫째는 전통적 정통이론(Traditional Orthodox Theory)입니다. 이 이론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적화통일을 위해 침략을 결심한 후 중국의 마오쩌둥과 소련의 스탈린으로부터 승인을 얻어 전쟁을 도발한 것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전쟁 직전 김일성의 중국 및 러시아 방문, 북한군의 일방적 우세, 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의 일사천리 남진 등 역사적 사실들을 종합할 때, 이 이론이 공산진영을 제외한 세계 모든 전문가들로부터 사실성과 설명력을 인정받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20만 명의 병력에 소련제 T-34 탱크 242대와 170여 기의 전투기를 포함하여 200대에 달하는 공군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군은 10만 명의 병력에 20대의 훈련기와 연습기가 전부였으며, 탱크와 전투기는 전무했습니다. 북한군이 그만큼 남침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 대목입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한.미군의 무력도발을 격퇴하기 위한 전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북한을 제외하면 이 주장을 믿는 나라는 없습니다.
둘째는 수정주의 이론(Revisionist Theory)입니다. 이 이론은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가 1981년에 출판한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라는 책에서 비롯된 이론입니다. 커밍스 교수는 한반도에서의 좌익과 우익, 지주와 농민,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무력충돌이 빈번했고 대구 10.1 사건, 여수 반란사건, 제주 4.3 사건, 38선 지역에서의 크고 작은 국지전 등을 감안하면 1945년부터 전쟁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먼저 발포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지를 펼쳤습니다.
다시 말해, 커밍스 교수는 당시 한반도 상황이 북한군의 남침을 유도했을 뿐 김일성의 도발 결심이 전쟁 발발의 주요 원인이 아닌 것으로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수정주의 이론은 한국의 좌파들과 운동권 인사들이 애호하는 학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후학들이 사료분석을 토대로 6.25 전쟁이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자 합의에 의한 명백하고 계획적인 남침임을 증명함에 따라 커밍스의 수정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3의 이론이 등장하여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국토통일원장관을 지낸 이세기 씨는 지난 6월 “6.25전쟁과 중국: 스탈린의 마오쩌둥 제압 전략을 중심으로”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전쟁의 발발은 정통이론의 설명대로 김일성-마오쩌둥-스탈린의 합작에 의한 것이지만 이후의 수행 과정은 중국을 제압하려는 스탈린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논지를 폈습니다.
저자는 최근 비밀에서 해제된 사료들을 토대로 스탈린이 6.25전쟁에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여 소모전을 벌이게 하여 중국을 탈진시킴으로써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중국의 도전을 극복하고 공산세계의 종주국으로 군림하겠다는 전략을 실천한 것으로 결론 짓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유엔안보리가 결의 제82, 83, 84호를 연달아 채택하면서 유엔군의 한국 파병을 결의할 때 소련이 불참함으로써 유엔군 파병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참전을 독려하면서도 소련 스스로는 개입을 자제했다는 점, 중국이 6.25 전쟁 참전의 후유증으로 이후 20년 동안 경제개발에 착수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이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정주의 이론을 탄생시킨 장본인인 커밍스 교수가 최근에 와서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13년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커밍스 교수는 자신은 결코 수정주의자가 아니라면서 한국정부와 학계가 자신의 논지를 과장하여 자신을 수정주의자로 몰아간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커밍스의 주장대로 한국학계가 과대해석을 한 것인지 아니면 커밍스가 슬쩍 자신의 주장들을 철회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소련과 미국의 6.25 전쟁 관련 문서들이 비밀에서 해제되어 공개되면서 수정주의 이론이 설 자리가 더욱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며, 새로이 공개되는 문서들을 바탕으로 6.25 전쟁의 발발뿐 아니라 전쟁수행 과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