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건대, 지난 7월 3-4일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한중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한국에게 있어 중국은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중국은 한국 총수출의 1/4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시장이며, 한해 인적 교류가 800만 명을 넘는 지리적 이웃입니다. 당연히, 이런 중국과 우호선린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긴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 주석의 방한이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교전쟁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계기였다는 사실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크게 보면, 현재 동북아에서는 급성장하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지향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해야 하는 미국 간에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자원내셔널리즘을 앞세우고 강대국으로의 회귀를 꿈꾸면서 최근 크리미아 반도를 합병하여 서방세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도 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이중구조의 신냉전(two-track new cold war) 구도’가 부상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과 일본 간의 자존심 대결과 군비경쟁이 가열되고 있어 센카꾸 열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한중관계 강화를 통해 미일동맹을 견제하고 일본의 과거사 부인에 대한 한중 공조를 강화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한국으로서는 한중관계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한미동맹을 대신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한국이 향후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서방세력의 일원으로 생존과 번영을 담보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컨대, 동북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교전쟁의 핵심을 꿰뚫어보면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에게 남겨진 외교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시 주석의 방한은 북한에게도 ‘변화’라고 하는 중요한 과제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이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訪中)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국빈 방문한 사실에 대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핵문제로 인하여 미국과의 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시 주석이 거듭 북핵반대 입장을 천명함에 따라 평양정부는 깊은 고립감과 불편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는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고 변화의 길을 걸어갈 것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북한이 이를 거부할수록 고립은 깊어지고 그에 따른 불편도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북한이 이러한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북한은 중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려는 듯 시 주석의 방한을 앞둔 7월 2일 방사포를 발사했고, 이후에는 휴전선과 인접한 원산, 평산, 개성 등지에서 계속해서 방사포와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한국을 압박하면서 긴장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도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겠노라고 성의를 보이면서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평양정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일동맹 체제 하에서 일본이 북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부채를 탕감받고 일본으로부터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있는 북한의 경제사정을 감안하면 ‘단솥에 물붓기’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개혁과 개방이 필수적이며, 개혁과 개방을 위해서는 부질없는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멈추고 국제질서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 당국자들이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병진정책’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개혁과 개방을 통해 경제를 일으키고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평양정부에게 부여된 오랜 숙제였으며,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이 숙제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온 세계는 북한이 이러한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