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8일 서울에서는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화해·치유재단’이라는 것이 설립되었습니다. 이 재단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이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룬지 7개월 만에 문을 연 것인데요. 일본정부가 출연하는 10억 엔으로 설립되어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사업들을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도전, 잊을만하면 재발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과거사 부인, 전쟁 역사를 왜곡·미화하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등이 여전히 껄끄러운 사안으로 남아 있으며 종군 위안부 문제 역시 지난 정부들이 풀지 못한 미결 문제였습니다.
1965년 당시 한국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내용으로 하는 기본조약과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를 한국에 제공하는 내용의 청구권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양국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조약은 과거사 청산 문제와 일제의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보상 문제를 다루지 못했고 독도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기본조약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열었던 강제합방조약의 무효화를 선언했지만 강압과 불법에 의해 체결된 불법조약임을 명시하지 못했으며 사죄와 반성이라는 표현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서명 직전 양국 외무장관 공동성명에서 일본 측의 유감과 반성을 표명했을 뿐입니다.
청구권 협정 역시 전쟁에 대한 배상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 등의 표현 대신에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의 청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 문제는 계속해서 논란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 내각 때 태평양 전쟁 중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했는데 일본은 일본 국민의 모금 6억 엔으로 설립된 이 기금을 통해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정부예산 출연을 통해 공식 사죄를 표명하기를 기대했던 한국정부는 반발했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보상금 수령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아시아여성기금은 한국, 대만, 필리핀, 네들란드 등의 수백 명의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그치고 2002년 사업을 종료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이후에도 한일 간의 뜨거운 이슈로 남았습니다. 일본 측이 1965년 체제의 출범으로 모든 보상 문제가 청산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의 피해자 및 가족들은 개인적 보상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입장을 개진했으며, 2011년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보상이 청구권 자금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양국은 무한정 이 문제를 미결상태로 남겨두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상은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결국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사이에서 타결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합의 내용에는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 엔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하는 것도 포함되었으며 이 합의에 의거하여 이번에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된 것입니다.
하지만, 남은 과제들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매우 감성적인 문제이어서 피해 당사자들로서는 이런 조치로 만족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최대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 대부분은 피해 사실을 숨긴 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난 상태이며 그나마 등록된 피해자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서 45명만이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입장에서는 합의의 내용이 너무나 부족한데다 너무나 때늦은 해결이어서 원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왕에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된 이상 재단 관계자들은 생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남북한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마땅한 민족의 문제이지만 불행스럽게도 현재의 남북관계는 그럴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