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국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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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1일 서울에 있는 해군호텔에서는 대한민국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여사의 99세 생일을 축하하는 호국음악회가 열렸습니다. 홍 여사는 한국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의 부인으로 현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청년 손원일과 결혼한 후 70년 세월을 해군을 위해 살아온 해군의 전설입니다.

남편인 손원일은 1908년생으로 1930년 상하이 국립중앙대 항해과를 졸업하고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해방병단(海防兵團 marine defense group)을 창설하는데 이것이 대한민국 해군의 효시였습니다. 이어서 1946년에는 해군사관학교를 설립하고 손원일은 당시 중령으로 초대 교장에 취임합니다. 그리고는 1949년에 한국 해병대를 창설하게 됩니다.

이렇듯 손 제독은 해군과 해병대를 창설한 주역입니다. 창설 후 한국해군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36척의 선박을 인수해 함대를 꾸렸지만 모두가 노후한 소형선박들이었으며 전투함은 한 척도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전투함을 갖기 위한 손제독의 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대한민국은 너무나 초라한 나라였기에 전투함 구입을 위한 예산염출이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손 제독은 모금운동을 시작했고 장병들도 월급의 10%씩을 떼서 모금에 동참했습니다. 손 제독은 그렇게 해서 모은 15,000달러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이면서 전투함을 구입하겠다고 했고, 이 대통령도 금일봉을 보태면서 꼭 그렇게 하자고 격려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1949년 미국의 대학교에서 실습선으로 사용되다가 폐선되기 직전이었던 600톤급 구식 함정을 구입하게 된 것입니다. 손 제독은 이 함정에 3인치 포를 장착한 뒤 ‘백두산함’이라 명명하고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1950년 4월 10월 태극기를 단 백두산함이 태평양을 가로 질러 진해항에 들어왔을 때 해군장병들은 첫 전투함을 가졌다는 감격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로부터 두달 후 백두산함은 나라를 구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북한군이 전면남침을 개시한 1950년 6월 25일의 밤 9시 후방침투 병력 600명을 싣고 부산으로 향하던 북한의 무장수송선을 대한해협에서 발견하고 필살의 전투 끝에 격침한 것입니다. 전쟁 발발 한달 만에 낙동강 이남의 영남지역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전 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당했던 사실을 감안할 때, 만약 백두산함이 북한군의 후방침투를 막지 못했다면 6.25 전쟁의 전개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홍은혜 여사는 손원일 제독과 함께 고스란히 한국해군의 눈물겨웠던 시절을 살아온 산 증인이자 스스로 해군의 일원이었습니다. 홍 여사는 남편이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장이던 시절 사관생도와 해군장병들이 구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크게 낙담했습니다. 당시 해군은 제대로 만든 군가가 없어 일본군이 부르던 노래에 한국어 가사를 붙여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피아노를 잘 쳤고 음악에 소질이 많았던 홍 여사는 스스로 해군이 부를 노래들을 작사 작곡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홍 여사의 손으로 만들어진 군가들은 오늘날까지 해군장병들에 의해 애창되고 있습니다.

백두산함 구입을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지던 시기 홍 여사는 해군장교 부인들을 독려하여 삯바느질을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을 모금에 보탰습니다. 남편인 손원일 제독은 초대 해군참모총장, 제5대 국방부장관, 초대 서독대사 등을 역임한 후 1980년 향년 71세로 생을 마감하고 서울 국립현충원에 묻혔으며, 홍 여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해군장병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해군의 어머니로 살고 있습니다.

음악회가 열리던 날 휠체어를 탄 99세의 홍 여사가 입장할 때 전현직 참모총장들을 비롯한 수백 명의 해군 원로와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서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해군중창단과 홍 여사의 모교인 이화여대의 중창단이 해군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군가들을 부를 때 모두는 감격에 겨웠습니다.

오늘날 한국해군은 7만여 명의 병력에 잠수함, 구축함, 이지스함, 상륙함 등 총 톤수 20만 톤에 달하는 정예해군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힘든 해군이기도 합니다. 북한군의 끊임없는 도발에 대응해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해적퇴치를 위해 아덴만에 군함을 보내고 국제평화유지 활동에도 동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회에 참석한 해군장성들은 눈부시게 성장한 해군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면서 오늘의 해군이 있게 해준 손원일 제독과 홍은혜 여사에게 끝없는 존경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음악회는 해군 중창단과 이화여대 중창단이 ‘바다로 가자’ ‘해방가’ ‘대한민국 해군아’ 등 홍 여사가 직접 만든 곡들을 부르면서 피날레를 장식했고, 참석자 전원이 합창했습니다.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 하지만, 홍 여사를 향한 참석자들의 박수는 행사가 종료된 후에도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홍은혜 여사는 진정한 한국해군의 어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