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4일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인 할머니 두 사람을 초청하여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이 만남은 다음달에도 계획되어 있는데 백악관의 외교담당 직원들도 동석한다고 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으며, 피해자들은 남북한, 중국, 동남아 등에 분포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성의있는 조치를 회피해왔고, 최근 아베 정부는 고노 담화마저 부정하려는 언행을 보여 피해국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고노 담화는 1993년 일본 관방장관이던 고노 요헤이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정부차원의 공식적 사과와 배상을 회피해왔는데, 새로이 집권한 아베 수상은 고노담화를 재검토를 지시하고 스스로 2차대전의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과거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역사왜곡에 대해 미국은 신중한 대응을 보여왔습니다. 2007년 미국 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20만 명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은 잔인성과 규모에 있어 전례가 없는 인신매매”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은 좀 더 신중했습니다. 미국이야말로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 전쟁의 피해국이지만 현 국제질서하에서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일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자제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초청하여 대화를 한 것은 미국 정부도 이 문제를 정치군사적 상황과는 별개인 중대한 인권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권을 중시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날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유엔은 인권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2006년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의 유엔인권위원회(CHR)를 유엔총회 산하의 유엔인권이사회(HRC)로 확대 개편했으며, 4년 주기로 유엔회원국들의 인권을 분석하는 ‘보편적 정례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제도와 함께 수시로 각국의 인권상황을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엔안보리도 인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여, ‘보호책임(R2P)’ 문제를 국제이슈화하고 있습니다. ‘보호책임’이란 특정 국가의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침해하고 그 정도가 심각할 때에는 국제사회가 개입하여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새로운 개념입니다. 2011년 국제사회는 이 개념을 내전 중인 리비아에 적용하여 개입했는데, 결국 카다피 정권은 축출되고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년 3월 5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25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한국의 윤병세 외교장관이 위안부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했고, 8월에는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OHCHR)도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면서 일본 정부의 무성의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인권 문제입니다. 인권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권리”를 총칭하는 것으로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인류보편적 가치입니다. ‘인류보편적 가치’라 함은 이를 수호하는데 있어 전제조건이나 변명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모든 나라가 준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존엄성을 짓밟은 것을 넘어 인간의 기본인권을 유린한 중대한 사례입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이 문제가 이웃국가들과의 관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만이 인권 문제의 전부는 아닙니다. 여러 나라에서 이런저런 인권사태들이 발생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2009년 유엔인권이사회가 북한에게 167개의 인권개선 사항을 권고한 사실을 기억합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2013년에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립하여 북한의 인권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이 인권후진국 낙인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개선조치들을 취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데에는 미국도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그 어떤 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인권 문제가 없는 한반도, 인권 문제가 없는 남북한 관계, 인권 문제가 없는 일본, 인권 문제가 없는 한일관계, 인권 문제가 없는 아시아가 실현되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