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ARF에서의 핵외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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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0일 미얀마에서 열린 제21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은 14일 의장성명을 채택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아세안 지역 안보포럼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안정적 질서를 구축하고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다자간 안보대화체로서 1994년에 출범했습니다. 여기에는 현재 아세안(ASEAN) 회원국 10개국을 포함하여 도합 27개국의 아태지역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매년 회권국의 외교장관들이 한 차례씩 만나면서 실무회의로 차관보들이 만나는 고위관리회의(S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은 상호 경쟁적이거나 적대적인 국가들에게 양자대화와 다자대화를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함으로써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고 우호적 관계를 촉진하고 있는데, 이 기구를 ‘작은 유엔총회’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창설회원국으로 제1차 회의부터 참여했고 북한은 2007년 제7차 회의부터 참가하고 있는데, 이 회의를 통해 남북한이 매번 치열한 외교경쟁을 벌이고 있음은 주목할만한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남북한은 2008년 한국인 관광객이 금강산에서 피살된 사건, 2009년 북한의 제2차 핵실험, 2010년의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을 둘러싸고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매번 열띤 외교경쟁을 벌여왔습니다.

이번 21차 회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지난 6월에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 고위관리회의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핵개발을 정당화시키면서 한미 양국이 매년 실시하는 을지훈련을 도발로 규정하고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8월에 열린 본 회의에서도 북한 대표로 참가한 리수용 외상은 중국, 일본 등의 외교장관들과 양자대화를 벌이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한국의 윤병세 외교장관 역시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 미국의 존 케리 국무부 장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등을 만나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고 미사일 발사를 계속함에 따라 스스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은 2006년 의장성명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북한의 핵실험 이후부터는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매번 성명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번 의장성명에도 북한의 비핵화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면서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한 비난이나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 같은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이미 여러 개의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안보리는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에 대해 결의안 1695호를 채택한 이래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 1718호, 1874호, 2087호, 2094호 등 도합 다섯 개의 대북 제재결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경제가 재건되고 북한 주민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희망하지만, 그에 앞서 북한 스스로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 발사를 통해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한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북한 정부는 경제도 살리면서 동시에 핵무력도 건설한다는 ‘병진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로 이웃나라들을 위협하는 일을 그만둔다면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는 열린 마음으로 북한의 경제개발을 돕게 될 것입니다. 남북이 함께 참가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남과 북의 대표들이 상생(相生)과 교류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