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 현상에 유의미한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선, 탈북자 숫자의 변화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주민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현상은 6.25 전쟁으로 휴전선이 다시 그어진 후에도 계속되었지만 일 년에 세 자리 숫자의 탈북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입니다. 이후에도 탈북자는 매년 증가하여 2002년부터는 네 자리 숫자의 북한 주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는 연평균 2,567명이 한국에 입국했고, 최고 기록은 2007년 2,914명이었습니다.
이 숫자는 2011년말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이후부터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2012년에 1502명. 2013년 1514명, 2014년 1397명, 2015년 1276명 등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에 들어오면서 탈북자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금년 6월말까지 815명이 입국하여 작년 상반기보다 15.6%가 증가했습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탈북자가 줄어든 것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정권이 탈북자 증가를 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북한은 2012년부터 두만강 일대에 철조망을 확대하고 국경경비를 강화했으며, 체포한 탈북자들을 더욱 강하게 처벌했습니다. 단순한 생계형 탈북자는 노동단련대나 교화소에 보내고 정치적 또는 사상적 동기가 드러난 탈북자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북한 형법 제62조는 “조국을 배신하여 타국으로 도망한 죄”에 대해 사형을 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2016년 들어서면서부터 탈북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주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다시 어려워지고 있는 북한의 경제입니다. 2010년 이후 완만하게나마 개선되던 식량 생산이 2015년부터 다시 감소 추세로 돌아섰으며, 금년 1월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유엔안보리가 결의 2270호를 채택하고 세계 각국이 대북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2013년부터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북한의 주된 수출품목인 무연탄, 철광석 등의 국제가격이 하락했습니다.
한국정부의 대북 제제도 북한 경제에 압박이 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제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한국정부는 북한 노동자 5만 명을 고용하던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시켰으며, 해외에 체류하는 한국 국민들에게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에 출입하지 말도록 권고했습니다. 북한의 외화벌이는 위축되었고, 한국인 고객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고 있던 해외의 북한 식당들은 경영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2016년 들어 탈북이 다시 증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엘리트 계층의 탈북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에 입국한 북한 이탈주민의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난 생계형 탈북자들이었고 대부분이 농부나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성별로는 여성이 절대 다수이고 출신지역으로는 비교적 용이하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함경도 출신이 과반수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외교관, 군인, 예술인, 지식인 등 탈북자의 직업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단순히 먹고 살 것을 찾아서가 아니라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기획형 탈북자들입니다. 금년 들어 괄목할 만한 것은 해외에서 일하는 외화벌이 일꾼과 외교관의 탈북이 잦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4월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시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한국으로 넘어온 이래 5월에는 산시성에서 6월에는 라오닝성에서 그리고 7월에는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에서 외화벌이 일꾼들이 탈북했고, 이어서 홍콩 과학기술대에서 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땄던 18세의 북한 영재 소년이 행사 후 한국 총영사관으로 들어와 망명을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던 중 8월 17일 한국의 통일부는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가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했다고 밝혔습니다. 태 공사가 영어, 중국어, 덴마크어 등을 구사하는 유럽전문가이자 최고 엘리트 외교관이라는 점에서 북한정권에게 준 충격이 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특히, 부인 오혜선은 북한에서 빨치산 1세대로 추앙받았던 오백룡의 집안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영호 공사는 경직된 북한체제에 대한 염증,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 자녀들의 교육 등을 이유로 탈북을 결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듯 생계 이외의 목적으로 탈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금 한국에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온 공직자, 숙청이나 처벌이 두려워 근무지를 이탈한 외교관과 군인,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넘어온 가수, 넓은 세상에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싶어서 자녀들을 데리고 탈출한 부모 등 다양한 엘리트 계층 북한인들이 자신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인 제2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세계는 엘리트 계층 북한인들의 탈북 사태를 주목하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