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남쪽 지역에서 북한제 목함지뢰로 인해 한국군 장병 2명이 부상을 입은 8월 4일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종료된 25일까지 3주간은 남북에게 있어 격랑의 기간이었습니다. 지뢰도발에 대한 응징으로 한국군은 8월 10일, 11년 만에 대북심리전 방송을 재개했고, 북한은 “48시간 내에 중단하지 않으면 확성기를 조준 타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17일 대남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북한은 21일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야포, 공기부양정 등을 전진배치했으며, 50여척의 잠수함을 출항시켜 한국을 위협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군도 최고 수준의 국지적 위협경보인 ‘진돗개 하나’를 선포하고 단호한 응징태세에 돌입했으며 한미 양국은 미국의 B-2스텔스 폭격기, B-52 폭격기, 핵잠수함, 핵추진항모 등을 파견하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던 북한은 22일 갑자기 남북고위회담을 제안했고, 한국이 이를 수용함에 따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북측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그리고 남측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홍응표 통일부장관이 참석하는 2대2 회담이 열렸던 것입니다.
이 회담은 8월 25일 공동발표문을 발표하고 종료되었습니다. 합의문은 서울 또는 평양에서 당국회담 개최, 지뢰폭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 북한의 준전시상태 해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 민간교류 활성화 등 여섯 가지 합의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합의에 따라 한국은 25일 정오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했고, 남북은 일촉즉발의 군사충돌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고위급회담은 남과 북 모두에게 승리를 안겨준 대화였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북한정권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북한이 대남협박과 무력시위를 접고 갑자기 대화를 요청한 것이나 지뢰도발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한국입장에서 보면, 한국군이 보여준 종전과는 다른 단호함, 박근혜 대통령의 확고한 안보소신, 정치권이 낸 한 목소리, 젊은이들이 보여준 호국의지, 북한의 경거망동을 견제한 중국의 역할, 결연한 한국방어 의지를 표명해준 동맹국 미국의 역할 등으로 어우러진 오케스트라가 이루어낸 성과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정부와 군 그리고 국민이 단결하는 것이 북한의 협박과 도발을 막아내는 최상의 방패임을 확인한 것은 가장 값진 교훈이었습니다. 한국군은 북한의 무력시위에 굴하지 않고 “도발시 즉각 응징”의 태세로 일관했고, 대통령은 도발하면 망설이지 말고 응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놀라운 안보의지를 확인한 것은 감격스러운 성과였습니다. 북한의 텔레비전 방송들이 한국에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거짓 선전을 하는 것을 직접 들었으며, 여행객으로 붐비는 한국 공항을 보여주면서 한국 국민들이 전쟁공포심으로 10배나 오른 항공권을 구입하여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북한의 방송은 한국 젊은이들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언론사들이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20대 청년 80%가 전쟁이 나면 싸우러 나가겠다고 답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반복되는 북한의 대남도발과 핵협박에 진저리를 내고 있으며, 도발하면 확실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은 이들 젊은이들의 애국심과 안보의식으로부터 국가안보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8.25 고위급회담의 최종적인 성패를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한국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도발동기를 영구히 소멸시키고 항구적인 상생구도를 구축하는 것인데, 이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 타결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휴전선 일대의 대북방송은 한국이 가진 유력한 심리전 수단이며, 북한이 그토록 집요하게 중단을 요구한 것 자체가 방송의 위력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한국이 이것을 포기하면서 받아낸 것은 사실상 유감 표명과 대화 약속뿐입니다.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북한은 사이버공격, 해킹, GPS교란 등을 통한 한국사회 흔들기를 계속하는데 왜 우리만 유력 심리전 수단인 대북방송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의 장병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유감만 표명하면 다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남북이 화해협력의 길로 들어서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본격 가동된다면 이런 불만들은 가라앉을 것이며 회담 역시 성공한 남북대화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반대로 북한이 또 다시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대화를 파탄시키고 대남 위협에 나선다면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가 소중한 전략자산을 내버린 졸속회담’이라는 원성에 직면할 것입니다. 요컨대, 8월 25일 고위급회담의 최종적인 성패 여부는 향후 북한의 행동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