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박근혜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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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은 제 69주년 광복절이었습니다. 이날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한일관계, 국내문제, 국제협력, 남북관계 등을 고루 언급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내년에 한일수교 50년을 맞이하는 만큼 한일 양국은 새로운 50년을 내다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날 선 비판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제협력과 관련해서는 남북한과 중국, 일본, 미국, 몽골 등이 참여하는 원자력안전협의체를 제안했습니다. 이는 박 대통령 자신이 평소부터 강조했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맥락을 함께하는 내용입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박 대통령은 소통과 교류협력을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분단과 대결의 타성에서 벗어나 핵무기를 버리고 국제사회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오는 10월 평창에서 열리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 북한 대표단도 참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이산가족들이 만나고 인도적 지원을 더욱 활발하게 펼쳐 작은 마을에서부터 남과 북이 함께 생활환경을 개선해나가는 민생인프라 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날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 구상 등의 표현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일방적 지원이 아닌 ‘공유’ ‘융합’ 등 상생의 의미를 가진 표현들을 사용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이를 두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동안 드레스덴 구상을 흡수통일 논리로 비판해온 점을 의식하여 앞으로는 환경, 문화교류 등 민감성이 적고 실행하기 쉬운 분야의 교류부터 추진하려는 한국정부의 유연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이 박 대통령이 밝힌 통일론을 비판하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릅니다. 북한은 이것을 흡수통일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북한 스스로 어떤 통일을 홍보해왔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노동당 강령과 유일영도 10대 원칙에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로의 흡수통일을 목표로 내걸고 있으며, 걸핏하면 남조선 혁명론과 통일전쟁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북한이 과연 한국정부의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을 시비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남과 북 모두에게 있어 통일이란 미래의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며 현재로는 어차피 상충되는 논리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통일론을 두고 남과 북이 서로 시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과 북은 분단이라는 현실 하에서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또 하나 공동의 현실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밝힌 신뢰 프로세스나 드레스덴 구상은 바로 이 상생이라는 공동과제에 관한 것이므로 북한이 시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은 남과 북이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것으로 ‘남과 북이 함께 잘 사는 한반도’로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중간결과를 제시한 것뿐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발표된 드레스덴 구상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적 지원,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한 동질성 회복 등 3대 대북제안을 한 것입니다. 즉, 남북간 신뢰형성을 위한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한 것뿐입니다.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서는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북한 영유아 및 산모에 대한 영양 지원 등을 제시했으며, 민생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서는 북한지역 농업 개발, 축산 및 산림의 개발, 교통과 통신을 포함한 인프라 건설 투자 등의 경제협력을 제안했습니다. 동질성 회복과 관련해서는 공동 역사연구와 보전, 문화예술 교류, 스포츠 교류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DMZ 평화공원 조성, DMZ를 관통하는 유라시아 철도 등도 언급했습니다. 요컨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란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남북이 함께 가꾸어가야 하는 ‘올바른 과정’ 또는 당연한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을 권고하는 것이기에, 북한이 이를 시비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북한이 화답할 차례입니다. 북한은 9월 한국에서 열리는 아세안게임에 선수단을 파견한다고 합니다. 이런 스포츠 행사가 남과 북이 한반도 신뢰형성을 위한 각종 협력 프로그램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