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월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제70주년 전승절에 참가했는데,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訪中)은 여느 대통령 일정과는 사뭇 다른 의미들을 담아냈습니다. 그만큼 거둔 성과가 각별하고 남겨진 과제도 무거운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만났고 이어서 텐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라 시 주석 및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옆에 나란히 서서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참관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박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참석한 외국 대통령 중에서 유일하게 박 대통령과 단독 오찬을 가지는 등 최고의 예우를 베풀었습니다.
현재 동북아에는 미-중 간 패권경쟁이 한창이며, 미일동맹과 중러제휴가 맞부딛치는 신냉전 구도가 부상 중입니다. 이런 시기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대통령이 화평굴기(和平崛起)와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넘어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꿈꾸는 중국의 군대, 그것도 6.25 전쟁에 개입하여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통일을 가로막았던 중국군을 사열한 것이니 어찌 특별하지 않겠습니까?
반면, 북한은 중국의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원수급 인사를 참가시키지 않고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보내는 것에 그쳤습니다. 이를 두고 세계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개발, 장성택 처형, 끊임없는 대남도발로 인한 한반도 긴장 등에 대해 중국의 심기가 매우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여섯 차례에 걸쳐 정상회동을 하는 중에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와 시 주석 간의 만남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사실을 두고도 이제 북중관계보다 한중관계가 훨씬 더 긴밀해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이번 중국방문이 가져온 성과는 경제 분야와 남북관계 관련 분야로 대별됩니다. 현재 한중 간 무역은 연 2,500억 달러로 한국 전체 무역량의 1/4을 차지하며,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입니다. 박 대통령의 방중을 통해 한중 양국은 이미 타결된 FTA의 조기실행 및 확대발전에 깊은 공감대를 확인했고, 박 대통령을 수반한 156명이라는 사상 최대규모의 경제사절단은 중국 측 파트너들과 활발한 접촉을 가졌습니다. 양국 기업 간 133건의 상담이 이루어졌고, 즉석에서 33건의 수출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비적대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생존을 위한 정체절명의 과제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성과는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직접적이었습니다. 지난 8월 4일 북한의 지뢰도발이 야기한 남북한 긴장상황에서 중국은 북한군의 경거망동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은 한반도 안정을 해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나타냄으로써 북한의 추가도발을 억제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번에도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무력도발이 있을 경우 서로 협력한다는데 공감했습니다. 남북간 무력충돌의 근절이 남북간 상생을 열어가는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우 긴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양국 정상은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재개 등에 대해서도 공감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에게 남겨진 과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중관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가생존에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한미동맹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은 미일동맹을 중시하면서 중국의 주변국들과의 쌍무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거대한 ‘안보벨트’를 구축 중이며, 한국은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한국을 환대하는 이유 중에는 한국을 미국의 안보벨트에서 이탈시키려는 전략적 목표와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에서 한중 공조를 다지려고 하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박 대통령으로서는 10월로 예정된 방미(訪美), G-20회의 등 금년 하반기에 전개될 다양한 정상외교 무대들을 활용하여 한미동맹의 건강성을 확인해야 하며, 북한의 핵위협과 무력도발을 통제·억제하기 위한 연합태세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역내 국가들 간의 협력을 도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보분야에 있어서 한미일 삼각협력 구도를 복원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어야 함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은 앞으로 전개될 박근혜 대통령의 정상외교에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