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사흘만인 6월 28일 서울을 점령했고 이후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한국군을 파죽지세로 밀어 부치면서 급속도로 남하했습니다. 6월 29일 유엔안보리가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을 결의함에 따라 주일 미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급히 한국으로 날아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고 7월 1일에는 미 지상군의 선별대가 부산에 도착했지만 북한군의 남진 속도는 전황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북한군은 7월 2일 용인을 점령하고 7월 6일에는 평택을 접수했으며 7월 13일에는 청주를 손에 넣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되고 7월 10일에는 미 25사단이 부산에 도착했지만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기습공격을 개시한 북한군의 거침없는 남진은 계속되었습니다. 7월 19일에는 익산이 북한군에 점령당했고, 7월 21일에는 대전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7월 말 그러니까 한국정부가 대전에서 대구로 그리고는 다시 부산으로 피신하는 동안 북한군은 낙동강에 도달했습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항전태세를 갖추었지만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미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이마저 위협을 당하자 한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철교를 폭파하고 마산-왜관-영덕-포항을 잇는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토의 90%가 유린된 것입니다.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고 전쟁을 끝내라는 김일성의 엄명을 받고 있는 북한군이 북쪽과 서쪽에서 압박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한국군과 유엔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구 북방 다부동에서 벌어진 ‘다부동전투’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십만 명을 투입했으며 대구 북방에 왜관에 1개 전차사단을 포함한 5개 사단을 집결시키고 8월 3일부터 29일까지 26일간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다부동전투가 한창이던 8월 16일 미공군의 B-29 폭격기 98대가 출격하여 인민군 집결지에 융탄폭격을 가했는데 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중폭격이었습니다. 이렇듯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맥아더 사령관은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그렇게 하여 구상한 것이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 즉 인천상륙작전이었습니다.
낙동강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에도 맥아더 사령관은 미 제10군단, 해병 제1사단, 한국군 제17보병연대, 해병 제1연대, 유엔군 등 7만5천 명의 병력을 상륙군으로 편성했고 참모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크로마이트 작전을 결행했습니다. 9월 15일 새벽 상륙군을 실은 261척의 함정들이 인천 앞바다에 나타나고 상륙군은 세 갈래로 나뉘어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제1파는 월미도를 점령하고 반격하는 북한군을 격파하는 임무를 맡았고 한국의 해군 첩보부대에는 상륙에 앞서 당일 0시 15분에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고 붉을 밝히라는 지시가 하달되었습니다. 제2파는 인천항을 점령하며 제3파는 인천의 남동부 방면으로 우회하여 인천항을 향해 반격을 시도할 북한군을 고립시키고 서울 쪽에서 오는 북한군 증원군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 임무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인천 상륙에 맞추어 낙동강 전선에서도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졸지에 보급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패잔병 신세로 전락하여 허둥지둥 북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상륙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남쪽에서 진군한 아군과 합류함으로써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은 종료되었습니다. 이후 중공군이 개입하여 전세가 다시 바뀔 때까지 북한군은 함경북도까지 정신 없이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그 때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 배우 리암 니슨이 열연한 맥아더 사령관은 성공 확률 5000분의 1이라는 인천 상륙작전을 결행하여 전세를 역전시킴으로써 불후의 맹장의 모습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는 한국 첩보부대의 지휘관은 인기배우 이정재가 맡았습니다. 첩보부대는 맥아더 장군의 특명대로 북한군으로 위장하여 적진에 침투하여 정보를 빼내는데 성공했으며 부대원들이 보여준 눈물겨운 전우애는 관람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9월 15일 0시 15분 예정된 팔미도 등대불은 환하게 밝혀졌고,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정전기념일인 7월 27일에 개봉되어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관람객이 500만 명을 넘어선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관객의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