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전술핵 재배치 논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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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발을 향한 북한의 광기(狂氣)가 도를 넘어면서 한미 양국에서는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문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실현성 여부를 떠나 이러한 논의가 부상함은 불가피한 현상인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겠다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며 내부적으로는 연일 반미 군중대회들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위험천만한 핵게임에 매달리는 것에 비례하여 한국에서도 자위적 안보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한국의 정치권 및 전문가 사회 일각에서는 전술핵을 재반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9월 3일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이런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 직후인 지난 9월 8일 미국의 NBC 방송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대응을 위해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존 메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장도 1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대북 군사옵션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전술핵이 한국에 배치된 것은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냉전이 고조되면서 숫자는 더욱 늘어나 900개가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미 정부가 핵무기의 존재를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핵무기는 폭격기, 전투기, 마타도르 크루즈 미사일, 나이키허큘리스 미사일, 서전트 미사일, 155mm 곡사포 등을 발사대로 사용하는 다양한 형태로 운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말 미소 냉전이 종식될 기미를 보이면서 한국내 전술핵은 감소했고, 1991년에는 모두 철수되었습니다.

1991년은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이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했을 때였지만, 남북 간에는 화해협력을 위한 대화가 그리고 미북 간에는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을 불식시키기 위한 협상이 전개되던 시기였습니다. 북한은 주한미군 핵무기의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북한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1990년을 전후하여 동유럽에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있었습니다. 1989년 폴란드인민공화국이 붕괴되었고, 동독에서는 공산당 체제가 붕괴하고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으며,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여 1992년 국민의 자유의사에 따라 평화롭게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습니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에서도 1965년이래 장기집권을 해오던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에 항거하는 민중혁명이 발생하여 차우세스쿠와 그의 아내는 12월 25일 민중에 의해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1990년 10월 3일에는 독일통일이 이루어졌으며, 소련 역시 연방해체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즉 북한이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시절이었고,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로 경제난과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을 절실하게 원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당시는 연방해체가 임박한 시점에서 소련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개방 정책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불발 쿠테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1991년 9월 27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공중발사 전술핵을 제외한 지상발사 및 해상·해저 발사 전술핵을 모두 철수하겠다고 선언했고, 일주일 후인 10월 5일 고르바쵸프 대통령도 동일한 내용의 선언으로 화답했습니다 그것이 부시-고르바초프 전술핵 철수 선언입니다.

당시 미국으로서는 주한미군 전술핵의 철수가 북한의 핵개발을 예방하고 소련의 민주화를 도울 것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11월 8일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비핵화선언을 발표했고, 이어서 1991년 12월 18일에는 주한미군 전술핵이 33년간의 한국주둔을 마감하고 철수되었음을 의미하는 ‘핵부재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991년 12월 25일에는 소련연방이 해체되어 냉전이 종식되었고, 12월 13일 남북한은 역사적인 기본합의서(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그리고 12월 31일에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서명했습니다. 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은 상호불가침과 화해협력 확대를 약속했으며, 비핵화공동선언을 통해 핵무기 포기는 물론 농축과 재처리를 보유하지 않음을 약속했습니다.

이렇듯 1991년 당시를 회상해보면, 북한이 한국과 국제사회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는지 그리고 왜 이 시점에 한국에서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일어나는 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어렵던 시기 동안 대화와 협상을 미끼로 상대방을 속이면서 시간을 벌었던 것입니다. 북한보다 훨씬 더 막강한 기술력과 자금력을 가진 한국이 비핵화공동선언을 지키면서 농축과 재처리를 자제하고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를 준수하는 동안 북한은 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배하고 NPT에 도전하면서 원폭과 수폭까지 개발했고, 이제는 한국과 미국에 대한 핵공격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북한군 수뇌부는 한국을 공격하여 “서울을 깔고 앉을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여 북한과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미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 결정한 바는 없지만, 전술핵 재반입을 요구하는 목소리 그 자체는 평양과 베이징에 분명한 메시지를 발하고 있습니다. 평양에게는 북한만이 핵을 보유한 비대칭 상태가 무한정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이며, 중국에게는 국제사회의 바램에 부응하여 대북 석유공급의 전면차단 등 보다 강도높은 제재조치들을 취해주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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