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평양에서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이 거행되었습니다. 5월에는 러시아가 2차대전 전승기념 열병식을 가졌고 9월에는 중국이 비슷한 전승기념행사를 가졌는데, 한달 만에 북한이 또다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북한당국이 이미 대규모 열병식을 예고한 상태이어서 전문가들은 북한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 부분은 열병식의 규모가 얼마나 클 것인가, 북한이 어떤 신무기들을 선보일 것인가, 누가 주석단에 등장할 것인가, 김정은 제1비서의 연설 내용은 어떤 것인가, 어떤 나라들이 축하사절을 파견할 것인가 등이었습니다.
우선, 규모면에서 북한의 열병식은 행진에 2만 명의 장병들을 그리고 카드섹션에 군인과 민간인 13만 명을 동원한 대규모 행사였으며, 이와 함께 40여 종 500여 대의 무기장비들도 등장했습니다. 즉 규모 면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열병식을 압도할만했습니다. 하지만, 서방에서 KN-O-8으로 부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KN-O-9으로 불리는 300mm 방사포를 제외하면 새롭게 선보인 신무기는 없었습니다. KN-O-8의 경우 실제 발사가 가능한 핵미사일인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추측이 나돌고 있는 형편이며, 행진을 통해 보여준 핵배낭에 대해서도 진짜 핵배낭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300mm 방사포는 사거리가 200km정도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휴전선 지역에서 한국의 대전지역을 사거리에 넣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한국군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축하사절을 보낸 나라는 중국을 위시하여 쿠바, 베트남, 라오스 등이 전부였고 대통령이나 수상이 참가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는데, 이는 북한의 초라한 외교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요컨대, 북한의 열병식은 규모만 클 뿐 질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고 국제사회의 공감대도 얻지 못한 그들만의 잔치였습니다. 북한의 권력서열을 엿볼 수 있는 주석단의 자리배치도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의 왼편에는 중국의 유윈산 상무위원과 김기남, 최룡해, 최태복, 김양건, 곽범기, 오수용 등 노동당 비서들이 자리를 잡았고, 오른편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 군부실세들이 자리했는데, 이들은 이미 북한의 실세로 알려진 인물들이었습니다.
한편, 김정은 제1비서는 열병식 연설을 통해 ‘인민’ 및 ‘청년’이라는 표현을 각 97회 및 19회나 언급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각 3회 언급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면서도 2012년 김일성 주석 탄신 100주년 열병식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더 높고 큰 목소리로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연설문을 읽었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김정은 비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주민경제와 이번 행사를 위해 많은 인력을 동원한 사실에 대해 위로의 뜻을 표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할아버지 및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향후 북-중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권력서열 5위인 유윈산 상무위원을 파견한 만큼, 이번 행사를 계기로 북-중관계가 얼마나 개선될 것인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됨은 당연하지만, 북-중관계의 변화가 북한의 로켓 발사와 제4차 핵실험 강행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변수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중국이 상무위원급 사절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이 당장은 로켓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이 얼마 동안이나 중국의 만류에 순응할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열병식 이후의 북-중관계와 중국의 역할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 국민에게는 특별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 노동당창건 기념식을 준비하기 위해 15억 달러 이상의 경비를 쓴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북한 전체 무역량의 1/5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아직도 많은 주민이 빈곤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이들을 방치한 채 미사일 개발, 핵무기 개발, 열병식 행사 같은 것에 많은 돈을 쓰고 있는 북한정권을 바라보면서 한국 국민이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