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북한의 화전양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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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열리던 지난 10월 4일 북한의 최고 실세 세 사람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어떤 전문가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북한은 폐막식을 하루 앞둔 시점에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전 총정치국장겸 국가체육지도위원,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등을 인천에 보내겠다고 요청했고 한국정부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이들의 깜짝 방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 사람은 김정은 위원장의 전용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하여 폐막식에 참가하여 북한 선수단을 격려했는데, 그 직전에 청와대 김관진 안보실장 등 한국의 고위급과 오찬회동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제2차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후부터 한국 국민 사이에서 남북관계 돌파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사흘 후인 10월 7일 서해에서는 북한의 경비정이 고의적으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 경비정의 침범에 대해 한국의 해군함정은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방송을 내보내고 북한 경비정이 이를 무시하자 경고사격을 실시했는데, 북한 함정이 응사함에 따라 서해에서는 또 한번 긴장이 고조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10월 10일 파주-연천 지역에서는 또 한번의 남북간 교전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파주의 오두산 전망대와 연천에서는 탈북자 단체들이 애드벌룬에 전단을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보내는 행사를 가졌는데 북한군이 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한 것입니다. 고사총 탄환의 일부가 휴전선을 넘어 한국의 연천 지역에 떨어짐에 따라 한국군은 교전수칙에 따라 기관총으로 북한군 초소를 향해 대응사격을 가했으며, 북한군이 응사함에 따라 휴전선 일대에 남북간 교전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남북간 대화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 국민은 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도발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전형적인 화전양면 전략을 또 한번 확인하고 큰 실망감을 안게 되었습니다.

사실, 남북이 서로에게 전단을 살포하는 심리전을 벌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최근 들어 북한은 탈북자 단체들이 날려보내는 전단에 대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정부에게 탈북자 단체들에게 조치를 취하여 대북 전단살포를 하지 못하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국가인 한국에서 정부가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금지할 수 없다는 점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형평성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과거 북한은 무차별적인 전단살포를 통해 대남 심리전을 자행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작년 봄 백령도에 전단을 살포하여 섬주민과 섬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 해병대 장병들에게 공포감을 조장하려 했으며, 2012년 파주 지역 일대에 살포된 전단은 한국의 특정 언론사들을 협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북한은 전문적으로 양성한 해커들로 하여금 한국의 사이버망에 침투하여 온갖 악플과 괴담을 퍼뜨리면서 한국의 여론을 호도하는 심리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잊을만하면 주요기관들의 전산망을 교란하고 GPS 교란을 시도하는 등 사이버전에 전자전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이 한국정부가 아닌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펼치는 대북활동에 대해 간섭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살포가 인권개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전단을 살포한 탈북자들은 북한이 1990년대 중반에 한국으로 망명한 고 황장엽 선생이 남한에서 이용만 당하다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대해 격분하여 이를 바로잡기 위한 내용들을 전단에 담았다고 합니다. 즉, 황 선생이 한국에서 따뜻하게 환영 받고 살다가 돌아가신 후 국립현충현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북한주민들에게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알권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누려야 하는 기본 인권입니다. 북한주민들이 한국과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알권리를 향유하고 있다면 탈북자 단체들도 굳이 전단살포를 지속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쏜 탄환들이 한국의 영토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고사총을 발사했다면 이는 중대한 도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해 NLL을 침범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해군이 교전수칙에 의거하여 대응하게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 것은 당연히 한국의 영토주권에 대한 도발입니다. 이렇듯 북한이 대화를 제의하면서도 도발을 강행하는 이중성을 보여서는 진정한 남북대화는 불가능합니다. 현재 남북 간에는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사안들이 수두룩합니다. 때문에 한국과 국제사회는 남북간 진정성이 충만한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