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지속함에 따라 남북한 관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북한이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전 총정치국장겸 국가체육지도위원,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등 실세 3인방을 한국에 보내 고위급 접촉이 이루어진 것이 지난 10월 4일이었습니다만, 이후 7일에는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여 포격전이 벌어졌고, 10일에는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날린 전단을 향해 발사한 북한의 고사총 탄환이 한국영토에 떨어지는 바람에 남북간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10월 19일에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로 무단 진입하여 한국군이 경고사격을 하고 북한군이 한국군 초소를 향해 조준사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지난 10월 15일 판문점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남북 장성급 회담이 열렸습니다. 이 회담은 남북이 10월 4일 제1차 고위급 접촉에서 제2차 접촉을 10월말 경에 가지기로 합의한데 따른 예비대화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담대표를 선정함에 있어 북한은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한국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국은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만나야 한다고 하는 등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결국 한국의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북한의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만나 회담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자리에서 북한 측이 또 다시 서해평화구역 문제를 거론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남북간 고위급회담이 본격적으로 재개될 경우 북한이 또 다시 서해 북방한계선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억지주장들을 내놓을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서해평화구역 문제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루어졌던 의제입니다. 당시 한국은 북한이 1953년 정전이래 해상분계선이 되어온 서해 북방한계선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이 선을 중심으로 등거리 등면적 원칙에 입각하여 남북해역을 포괄하는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여 함께 어로작업을 하면서 북한의 항만개발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이 1999년 9월 2일 발표한 ‘조선서해해상군사분계선’과 2000년 3월 23일에 발표한 ‘서해5도 통항질서’를 전제로 하는 서해평화구역을 제시했습니다. 조선서해해상군사분계선이라는 것은 현재의 북방한계선보다 훨씬 더 남쪽에 경계선을 다시 긋겠다는 것이며, 서해5도 통항질서라는 것은 한국군이나 민간인이 서해5도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영해를 통과해야 하므로 자신들이 지정한 두 개의 수로를 이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1953년 6.25전쟁 정전이래 실질적이고 합법적인 해상경계선으로 자리매김되어온 북방한계선을 무력화시키고 서해에서 새로운 분란을 일으키겠다는 심각한 도발이었습니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구역 문제가 타결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6.25 전쟁의 포성이 멎던 시점에 한국군과 유엔군은 동서해 상의 거의 모든 도서들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정전과 함께 한국군과 유엔군은 이 섬들을 모두 북한에게 넘겨주고 전쟁이전에 한국이 관할했던 38선 이남의 5개 도서들만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것이 현재 한국이 관할하는 서해5도입니다. 당시 단 한 척의 해군함정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북한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 도서들을 넘겨받았고, 이후 이 선을 준수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은 해군을 다시 재건하던 1970년대 초반부터 서해에서 도발을 저지르기 시작했고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도발을 일삼으면서 수많은 한국군 장병과 민간인들의 목숨을 희생시켜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보면 피로써 지켜온 정당한 주권선이자 군사경계선인 북방한계선을 북한이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해 언제든 단호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으며, 때문에 향후 남북대화에서 북한이 이 문제에 대한 억지주장을 지속한다면 서해평화구역과 관련하여 어떠한 타결도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현재의 북방한계선을 존중한다면 서해평화구역의 설정이 가능해짐은 물론 대한민국은 그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다양한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의 경제개발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