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SCM)는 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시다시피 현 체제 하에서는 전쟁이 나면 한미 양국이 한미연합사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양국은 전작권을 2012년에 분리하기로 합의했었고,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에 분리 시점을 2015년으로 연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한번 더 연기하여 2020년 중반 이후로 미룬 것입니다. 한미연합사도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으며, 연합사의 위치도 평택으로 이전하지 않고 서울에 잔류시키기로 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2007년 당시 전작권의 조기 분리를 추진했던 사람들의 논리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전작권을 분리해야 독자적인 군사외교를 펼칠 수 있고 나라의 자존심도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동안 많은 국방비를 써왔으니 한국군이 충분한 독자능력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전작권의 분리에도 불구하고 동맹이 깨지는 것도 아니고 미국의 개입의지가 약화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런 생각으로 미국과 협상을 벌여 2012년에 전작권을 분리하기로 합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의 안보상황은 한국정부와 국민의 바램과는 딴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고, 야포와 특수부대를 포함하여 전반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했으며,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포함한 군사도발을 반복했습니다. 이에 한국 내에서는 전작권의 조기 분리에 대한 반론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현 한미연합사 체제와 전작권 체제란 한미 양국군을 동일한 지휘체계 하에 둠으로써 전쟁이 발발하면 자동적으로 양국 군대가 함께 싸우게 되어 있는 것인데, 북한의 안보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굳이 이 체제를 해체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분출한 것입니다. 한국군이 그동안 많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무기 등 전세계적으로 금지 또는 감축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들을 고수하고 있는 마당이라면, 감시정찰(ISR), 지휘통제통신(C4I), 정밀타격(PGM) 등에 있어서 세계 최강인 미군의 억제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터져 나왔고, 그 결과 현 연합사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의 분리 시점을 2015년으로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헌법에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명시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다짐과 함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작년 전반기 동안에는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을 차단하고 한국과 미국에 대해 선제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위협까지 가해왔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정부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 안보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인식을 함께 하여 이번에 전작권 분리 시점을 한번 더 연기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는 그동안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북한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상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가져온 원인을 제공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작권 문제의 역사는 1950년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쟁을 맞은 한국군이 당황하는 사이에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고 있었고,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 주둔 중인 맥아더 장군에게 급히 달려와서 침략군을 막아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미군에게 넘겨졌던 것입니다.
이후 한국의 성장과 함께 평시 작전권은 한국으로 환수되었지만, 연합사 체제로 전작권을 행사하는 것이 전쟁억제에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현 체제를 유지해온 것입니다. 6.25 남침과 북한의 도발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한미동맹이 필요하지 않았고 주한미군도 전작권 문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운 위협과 무력도발을 하지 않고 남북이 오손도손 협력하는 안보환경을 조성했더라면, 한미 양국이 전작권 분리를 재연기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현 전작권 체제에는 당연히 장단점이 혼재합니다. 하지만, 한반도 안보여건을 종합할 때 현 체제를 좀 더 유지하기로 한 이번의 결정은 적절하고 불가피한 조치인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