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중국 시진핑 2기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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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이 제19차 당대회(10.18~10.24)를 마치고 10월 25일 7명의 상무위원을 발표함으로써 시진핑 집권 제2기를 개막했습니다. 이번 당대회는 개최 전부터 세계의 관심을 받았는데, 관심의 초점은 시진핑 주석의 권력이 어느 정도로 막강해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당대회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잣대를 제시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잣대는 공산당의 당헌이 어떻게 개정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당대회가 ‘시진핑 사상(习近平思想)’을 명시하는 것으로 당헌을 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잣대는 시진핑 이후의 차기 지도자를 미리 선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임기 중간에 열리는 당대회에서 후계자의 윤곽을 드러냄으로써 권력승계를 둘러싼 마찰과 갈등을 미리 예방하는 관례를 지켜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3기 지도자인 장쯔민 주석의 임기 도중에 제4기 지도자가 될 후진타오를 부상시켰고, 후진타오의 임기 중간에 제5기 지도자가 될 시진핑을 부상시켰습니다.

따라서, 전통대로라면 시진핑 주석의 임기 중간에 개최되는 이번 제19차 당대회에서 제6기 지도자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 맞지만,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 강화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 번째 잣대는 공산당의 최상위층 엘리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위원회의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204명에 달하는 중앙위원에 ‘시자쥔(习家军)’ 또는 ‘시진핑 군단’으로 불리는 친(親)시진핑 세력이 얼마나 포진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그룹으로 사실상 국정을 주도하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中国共产党中央政治局常务委员会)에 관한 것으로, 상무위원의 숫자와 구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상무위원회는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을 대변하는 기구로서 다양한 계파의 이익을 통합·조정한다는 의미로 각 계파를 대변하는 여러 명의 상무위원을 두고 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에는 7명에서 9명으로 늘어났다가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면서 다시 7명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후진타오 시대에 통합과 조정이 필요한 계파들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상무위원의 숫자가 줄어들 것인가, 다양한 계파를 대변하는 인사들이 발탁될 것인가, 아니면 친 시진핑 인사들로 채워질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었으며, 칠상팔하(七上八下)의 법칙, 즉, 67세면 상무위원이 될 수 있고 68세면 되지 못한다는 연령제한의 불문율이 지켜질 것인가 하는 것도 초점이었습니다.

당대회의 결과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시진핑 주석의 권력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당대회는 ‘시진핑 사상’을 명시한 당헌을 채택했으며, 중앙위원회에는 시진핑 군단이 대거 진입했으며, 정치국 위원 25명 중 17명이 친 시진핑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차지했습니다. 정치국상무위원의 숫자는 7명을 유지했으나, 친시진핑 인사들로 대거 물갈이 되었으며, 차기 권력승계자의 윤곽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상무위원회에는 시진핑 주석 자신과 리커창 총리를 포함하여 일찍부터 시진핑 주석의 복심으로 불려온 천민얼 충칭시 서기, 30대부터 시진핑과 교분을 쌓아온 리진수 당중앙 판공청주임, 왕양 부총리, 한정 상하이시 서기, 후춘화 광둥성 서기 등이 발탁되었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왕치산 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정도입니다. 왕치산은 시진핑 주석의 오른팔로 시주석 집권 전반 5년 동안 고위층 부정부패 척결을 진두 지휘해온 인물이어서 상무위원에 유임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69세라는 나이로 인하여 제외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서 시진핑 주석은 당중앙위원회와 정치국상무위원회를 장악하게 되었고, 베이징, 상하이, 충칭, 텐진 등 4개 직할시의 서기를 모두 지신의 심복들로 채웠으며, 왕치산에 이어 부패척결 과업을 이어갈 당기율검사위에 자신과 같은 산시성 출신인 자오러지 당중앙조직부장을 발탁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전반 5년 동안 대대적인 반부패 캠패인을 벌려 전국에서 당원 150만 명을 징계하고 28만 명을 기소했는데, 이중에는 440명의 중앙 및 지방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포함될 정도로 광범위했습니다. 군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통해 1만3천 명의 장교들을 해임했고 50명 이상의 부패 장성들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시진핑 주석은 신형대국관계를 앞세우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지향해왔습니다. 군사적으로는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을 통해 대국굴기(大國崛起)를 도모하면서 동시에 군사대국을 향한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해왔고,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앞세우고 경제적·정치적 대국화를 추구해왔으며, 광범위한 부패척결 운동을 통해 국내 권력기반을 굳혀왔습니다. 이번 제19차 당대회는 시진핑 주석의 강화된 권력입지를 재확인한 행사로 마감되었습니다.

당대회 직후인 10월 27일에 개최된 첫 정치국회의가 시진핑 주석을 ‘영수(領袖)’로 호칭함으로써 태자당, 상하이당, 공청단 등과 같은 계파들의 의미는 희석되었으며, 시 주석이 명실공히 모택동·등소평 반열의 권력자가 되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의 권력이 강화된 만큼 그가 져야 할 책임도 많아졌습니다.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2050년까지 현대화되고 강력한 중국을 건설하겠다는 ‘신 시대’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제 중국의 정책과 중국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성장이 미치는 영향은 중국 자체나 동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것입니다. 그 만큼 세계는 시진핑 제2기의 출범과 함께 앞으로 중국의 행보를 주시할 것이며, 특히 세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북핵 문제에 대한 그의 정책에 우선적으로 주목할 것입니다. 세계는 중국이 더욱 책임있는 자세로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에 나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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