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9일은 베를린장벽 붕괴 25주년이었습니다. 독일인이라면 당연히 이날을 기억하고 있겠지만,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살고 있는 남북한의 한민족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1945년 5월 8일 나치독일을 패망시키고 2차 대전에서 승리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4대 전승국은 6월 5일 선포한 베를린 선언을 통해 독일과 베를린을 분할 관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독일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관할하는 서독과 소련이 관할하는 동독으로 양분되었으며, 베를린도 같은 방법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이후 서독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서방국의 일원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동독은 공산당인 독일사회주의통합당(사통당)의 일당독재하에서 사회주의 경제를 채택했지만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으로 인하여 상대적인 경제 낙후국으로 남았습니다. 동독 주민의 서독탈출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고, 그렇게 하여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국민은 520만 명에 달했습니다. 결국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동독 국민들이 동서독의 체제대결에서 동독이 패배했음을 선포한 사건이었으며, 독일통일의 위대한 서막이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당시 소련의 개혁개방은 폐쇄적인 동독체제의 붕괴를 촉발시킨 근본 원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되면서 소련은 개혁(Perestroika)과 개방(Glasnost)을 시작했고, 1987년에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폐지를 발표했습니다. 브레즈네프 선언이란 소련군을 포함한 바르샤와조약기구 회원국들의 군대가 1868년 프라하의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한 직후 발표된 것으로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문제가 있으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위성국가들에 대한 소련군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르바쵸프가 개혁개방을 시작하고 브레즈네프 선언을 폐기하자 변화에 목말라있던 동독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1989년이 되자 동독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표현과 언론 그리고 집회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했고, 3월에는 여행의 자유화를 요구하면서 라이프찌히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가 달려와서 이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하지만 불붙기 시작한 동독의 자유화 열풍은 무력으로 막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1989년 9월에는 수만 명의 동독국민이 오스트리아와 항가리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했습니다. 여행의 자유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1월 3일 동독정부는 체코를 통해 서독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이틀 동안 1만 5천명이 서독으로 넘어갔고 동베를린 광장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시위를 벌이고 공산정권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11월 9일 동독정부는 결국 여행 자유화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를 굴복시킨 동베를린 시민들은 환호하면서 베를린장벽을 허물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베를린장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분단되면서 독일인들은 동서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베를린을 제외한 동서독 국경선 전역에 철조망이 쳐졌습니다. 그러자 동독인들이 동베를린으로 와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에 1961년 동독 공산당의 울브리히트 서기장은 동독 인민군을 동원하여 장장 161km의 장벽을 쌓아버렸습니다. 지뢰가 매설되고 전기철조망과 자동소총 장치도 설치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숱한 동독인들이 목숨을 걸고 이 장벽을 넘었으며,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이렇듯 28년간 독일분단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던 베를린장벽이 동독 주민의 자유화 의지에 의해 해체된 것입니다. 장벽이 무너지자 동서 베를린 시민들은 얼싸안고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목이 터지도록 함께 외쳤습니다. Wir sind ein Volk. 우리는 모두 독일국민이다 라는 뜻입니다. 11개월 후에 들이닥칠 독일통일의 서막을 알리는 위대한 외침이었습니다. 한반도에도 이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250km 철조망이 걷히는 날 동서독이 그랬듯이 남북도 얼싸안고 통일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