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한국군은 호국훈련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호국훈련이란 1996년부터 한국군의 육해공해병대가 합동으로 벌여온 군사훈련으로 1994년 한국군이 평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한국군 단독 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그때부터 정례적으로 실시해오던 훈련이었습니다. 훈련의 핵심은 육해공해병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합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4년 전의 일을 잊지 못합니다. 당시 한국은 2010년 11월 22일부터 30일까지 2010년도 호국훈련을 실시했는데, 23일 오전에는 훈련의 일환으로 서북도서에 주둔하는 한국 해병대가 포사격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사격훈련이 끝나고 얼마 후인 오후 2시 경 황해도 개머리 진지에 주둔하는 북한군이 느닷없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개시했습니다.
북한군은 2시 34분부터 46분까지 12분 동안 15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는데 이중 90여 발은 바다에 떨어지고 60여 발이 연평도에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포탄을 맞은 연평도 주민들은 혼비백산에 빠졌고, 한국 해병대는 북한군의 첫 포탄이 떨어진 후 13분이 지난 2시 47분부터 대응사격에 나서 3시 15분까지 무도에 있는 북한군 해안포 진지에 K-9 자주포 50여 발을 발사했습니다. 그로부터 13분 후인 3시 12분부터 29분까지 17분 동안 북한군은 또 다시 20여 발의 포탄을 쏘았습니다.
한국 해병대는 즉각 재대응에 나서서 3시 25분부터 3시 41분까지 16분간 30여 발을 발사했습니다. 이 때에는 한국군의 대포병레이더가 북한군의 공격지점을 탐지했기 때문에 한국군은 공격지점인 개머리 해안을 향해 쏘았습니다. 2시 38분에는 한국 공군의 F-16 전투기 2대가 연평도에 도착했고 이어서 2대의 F-16기와 4대의 F-15K 전투기도 합류했습니다. 한국 공군기들은 Slam-ER 등 가공할 정밀유도폭탄들을 탑재하고 있었지만, 한국의 합참이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아 되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교전은 종료되었지만, 북한군의 포격으로 한국 해병대는 전사자 2명과 부상자 16명을 냈고, 민간인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연평도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연평도의 전체 민간건물 924동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21동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많은 집들이 불타거나 부서지고 곳곳에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불안에 떨면서 어선을 타고 육지로 떠나버려 한동안 연평도는 유령의 섬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4년전 연평도 포격도발의 정확한 역사입니다.
북한군의 연평도 도발은 실로 중대한 의미들을 담아낸 대사건이었습니다. 한국정부와 한국군에게는 1953년 6.25 전쟁 정전 후 처음으로 북한군이 한국 영토에 포탄을 쏜 심각한 군사도발이었습니다. 한국 국민은 한국군이 한국의 영해에서 그것도 북한 쪽이 아닌 남쪽을 향해 포사격 훈련을 실시한데 대해 북한군이 무력도발로 대응했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쳐야 했으며, 온 세계는 북한군의 도발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북한군이 민간인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가했다는 사실에 경악해야 했습니다.
이 사태는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악영향을 끼치면서 막대한 이미지 훼손을 초래했습니다. 이렇듯 역사란 당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일깨워주고 후세들에게 필요한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소중한 것이며, 그래서 역사란 잊혀져서도 안되고 잊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한국군은 현재 2014년도 호국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번에도 북한의 비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대란 훈련을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북한군도 매년 하계와 동계로 나누어 두 차례씩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한국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북한군의 정기 군사훈련에 대해 한국이 시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한국군의 훈련이 북한군의 무력도발의 빌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남과 북이 아름다운 역사를 쌓아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