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1~12일 부산에서는 제2차 한-아세안(ASREAN)특별정상회의가 열렸습니다. 한국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대화관계를 수립한 것은 1989년의 일이었지만, 2004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 합의와 2007년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거쳐 2010년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한-아세안정상회의는 ASEAN 10개국 정상과 한국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정상회의로서 제1차 회의는 2009년 제주도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2차 회의는 양측의 관계수립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브루나이 등 총 10개국의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이 참가했습니다.
한-아세안정상회의는 여러 측면에서 한반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쩍 높아진 아세안의 정치·경제적 위상을 감안하면 아세안은 한반도 주변의 제5강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세안은 인구 6억 4천만 명에 3조 달러의 GDP를 가진 거대시장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막강한 정치안보적 잠재력도 가지고 있어 중국과 일본이 러브콜(구애)을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년 아세안을 방문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아세안과 중국의 운명공동체 관계를 강조하면서 메콩강 유역 개발에 3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뒤질세라 일본의 아베 수상도 향후 5년간 2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세안과 한국의 관계는 더욱 밀접합니다. 2013년 한국과 아세안 간의 교역은 1,350억 달러로 이는 FTA가 발효된 2007년 618억 달러의 두 배가 넘으며, 첫 대화관계를 수립한 1989년에 비해서는 무려 16배나 증가한 규모입니다. 작년에 아세안 국가를 방문한 한국인이 462만 명에 달할 만큼 인적 교류도 매우 활발합니다. 아세안은 한국에게 있어 제2의 수출시장이자 제3의 투자지역이며, 아세안으로부터 얻는 무역흑자는 전체 무역흑자의 60%에 해당합니다.
아세안은 1970년대 석유위기 동안 원유를 공급하여 한국경제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세안 또한 과거 열강들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을 매우 신뢰할만한 경제파트너로 간주하여 한국의 경제성장 정책, 새마을 운동 등을 배우면서 착실하게 성장을 지속해왔으며, 현재 13억 인구의 중국시장과 10억 인구의 인도시장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시장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관계는 앞으로도 무한한 발전의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를 유치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개막식 기조연설을 통해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는 중소기업들 간의 생산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글로벌 차원의 한-아세안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상호간 규제를 철폐하여 상품교역과 에너지에 치중된 협력분야를 서비스와 문화사회 분야로 확대하자는 것이며, 셋째는 자유무역협정(FTA)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적인 자유화 협상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세안 정상들은 이러한 제의에 동의하여 향후 교역을 2020년까지 2,0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화답하여 박 대통령 역시 2015년부터 아세안 국민의 한국입국 비자를 간소화하고 광주와 부산에 아시아문화전당과 아세안문화원을 개관하기로 했으며, 아세안의 우수 이공계 인재들을 매년 100명씩 초청하여 인재양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세안은 현재의 협력체제를 넘어 회원국 전체를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묶는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아세안과 주변 아시아국가들을 합쳐 16개국이 참여하는 통합 FTA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 GDP의 74%를 커버하는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데, 예정대로 2015년에 아세안경제공동체가 구축된다면 양측 간의 경제협력은 또 한번 순풍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는 아세안 국가들의 음식점과 문화상품들이 확산되고 있으며, 아세안 국가들에서는 K-POP 등 한류열풍이 확산되고 있어 문화교류도 한층 더 활력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제2차 한아세안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아시아국가들의 공동번영을 위한 회합에 북한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북한도 핵무기를 포기하고 인권개선을 수용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앞당길 수 있으며, 공동번영을 향한 아시아국가들의 협력에 동참하여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