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3일 한국 국방부 청사에서는 한민구 국방장관과 일본 방위성 장관을 대신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에 서명했습니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이란 체결 상대국으로부터 받는 군사정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고 전달‧보관‧관리‧폐기하는 절차를 합의한 것으로서 Ⅰ급 비밀을 제외한 Ⅱ급 비밀 이하의 군사비밀만을 교환 대상으로 합니다. 말하자면, 교환할 정보들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정보교환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32개 국과 정부 간 또는 국방부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상태이며, 당연히 중국과의 협정도 모색 중입니다.
어쨌든 한일 양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북핵 대처에 있어 유의미한 공동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째, 한•미•일 삼국은 2014년에 '3국간 정보공유약정(TISA; Trilateral Information-Sharing Agreement)'을 맺어 상호간 군사정보 공유를 합의한 바 있지만, 이번에 한일 간에 이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미국을 거치지 않고 일본과 직접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한국이 가진 인간정보(Humint)나 한국이 먼저 탐지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일본에게 제공하는 대신 일본으로부터 우수한 기계정보들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5기의 정보수집위성, 6척의 이지스함, 1,000km이상의 탐지거리를 가진 지상 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잠수함 정보와 감청능력(SIGINT)에 있어서는 최강국입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향후 한국에게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잠수함 활동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은 한국의 지대한 안보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중복 정보를 통해 정보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즉, 위성감시 횟수가 많을수록 영상정보의 질은 개선되며, 정보교환을 통해 정보 사각지대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북한의 핵•미사일 정보들을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물론, 이것으로 한일 간 군사정보협력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시비,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대한 한국 국민의 우려 등 여전히 많은 미결사안들이 남아 있고 서로에 대한 국민감정도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북핵 문제의 엄중성이 가중되면서 한국과 일본이 정보협력을 통해 공동의 안보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지고 있다는 점과 그렇다면 정보협력을 포함한 안보협력 문제만큼은 냉정한 안보논리 하에 다른 문제들과 분리하여 다룰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한일 양국 간에 이러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즉, 북핵이 한일 양국의 '공통의 위협'으로 인식되면서 군사정보 협력의 필요성이 재부상한 것입니다. 이후 2009년 북한의 제2차 핵실험과 2010년 북한 잠수함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태를 거치면서 한일 국방장관은 2010년 6월 주요국가들의 국방장관 회담인 샹그릴라 대화에서 만나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2011년 1월 국방장관회담에서 실무 협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문안은 2012년 4월 23일에 가서명되었고, 6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가결되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당시 한국사회 일각에서 국민의 반일(反日)감정을 무시한 것이라는 우려를 표출했고, 이에 이명박 정부는 서명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2013년에 제3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두 차례에 걸쳐 '우주개발용 광명성3호'라는 미명 하에 사실상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했는데, 이것이 2014년 한‧미‧일 삼국이 정보공유약정을 체결한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북한은 2016년에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하고 수 차례에 걸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했으며, 도합 24차례에 걸쳐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6월 22일에는 무수단 미사일을 고각(高角)으로 발사하여 500km만 비행하도록 함으로써 중거리 미사일로도 한국의 수도권을 강타할 수 있음을 위협했습니다. 이렇듯 북한의 핵위협이 시시각각 엄중해지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재추진하게 되었고 11월 23일 마침내 서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있게 한 원인은 다름 아닌 북한의 핵위협이며 이런 위협이 지속되는 한 한일 양국의 안보협력도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