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을미(乙未)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2015년은 미국과의 대화재개는 물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도 실패하여 더욱 고립된 한 해였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을 제외하면 아무런 실마리를 풀지 못한 한 해였으며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도발과 긴장 그리고 불발로 끝난 남북대화로 점철된 한 해였습니다.
2015년 벽두는 미국의 대북제재로 시작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소니픽쳐스사에 대한 해킹 사건에 대해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이 북한정부를 해킹의 배후로 지목하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제재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5월 9일 러시아의 제70회 전승기념일 행사 시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참가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지만 북한이 돌연 김정은 위원장의 방문을 취소함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은 불발로 끝나고 방문을 취소한 배경에 대해 추측들이 무성했습니다.
9월 초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제70주년 전승절 행사가 거행되었는데 이 때에도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대신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보내는 것에 그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여섯 차례에 걸쳐 정상회동을 하는 중에 김정은 제1비서와 시 주석 간의 만남이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어서 북-중 관계와 관련한 많은 추측들을 낳았습니다. 11월에는 북-중 관계 회복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공연 3시간을 앞두고 돌연 공연을 취소하고 귀국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김정은 위원장이 11월 10일 북한의 수소폭탄 능력을 선언한 데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데다 공연 내용이 지나치게 김 위원장 일인에 대한 우상화를 담고 있어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이 쿠바, 베트남, 미얀마 등과의 화해를 더욱 가속화하고 이란 핵문제를 타결함에 따라 북한의 고립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중에도 북한의 대남 자세에는 아무런 개선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월 25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국방위원회 정책국 명의의 성명발표를 통해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고 한국 보수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와 한국언론의 북한관련 보도들을 맹비난했습니다. 키리졸브 연합훈련이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방어용 훈련이라는 점, 북한의 침략이 한미동맹과 한미 연합훈련을 있게 한 원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국이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비난은 당연히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북한이 2020년까지 50개 이상의 핵무기를 가진 중견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5월 8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핵위협을 가중시켰습니다. 한국의 청와대 앞으로는 자신들이 정한 해상분계선을 넘는 한국 함정들에 대해 예고 없이 조준타격을 가하겠으니 맞설 용기가 있으면 도전해보라는 협박성 통신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터진 목함지뢰 사건은 남북간 긴장을 더욱 끌어 올렸습니다. 8월 4일 군사분계선 남쪽 440m 지점에서 북한군이 불법 매설한 지뢰가 폭발하여 한국군 2명이 다리를 절단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는데, 북한이 2010년 천안함 공격에 이어 또 다시 도발주체를 숨기는 시차공격 방식으로 무력도발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응징으로 한국은 11년 만에 휴전선 일대의 대북심리전 방송을 재개했고 이에 대해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조준 타격’ ‘불바다’ 등의 협박과 함께 50여 척의 잠수함을 출항시킴으로써 일촉즉발의 긴장이 조성되었습니다.
이 긴장은 ‘2+2’ 회담, 즉 북측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그리고 남측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홍응표 통일부장관이 참석하는 남북회담을 통해 해소되었는데 이 때 발표된 8월 25일자 공동발표문을 통해 지뢰 사건에 대한 북한의 유감표명 및 한국의 대북방송 중단과 함께 당국회담 개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 민간교류 활성화 등을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에 따라 2015년 10월 20일에서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는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남과 북의 200여 이산가족이 상봉했지만 이산가족 1세대가 고령으로 매년 수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상봉행사의 정례화와 규모확대 그리고 상봉 후 상호교신 등 많은 과제들을 재확인시켜주었습니다.
또한 8.25 합의에 따라 12월 11일과 12일에는 판문점에서 남북 차관급회담이 열렸지만,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않으면 다른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 확대, 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개성공단의 통행·통신·통관문제 개선 등 다양한 의제를 준비하고 회담에 임했던 한국 대표단은 또다시 좌절감을 안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렇듯 한 해의 끝자락에서 되돌아 본 남북관계는 답답함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전망도 개혁개방을 수용할 가능성도 없으며 대남자세에서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할 징후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남과 북은 그래도 새해에는 더 좋은 소식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각오와 기대를 가지고 다가오는 병신(丙申)년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