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이 캄보디아에 건설한 앙코르와트 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북한은 1천만 달러를 투자해서 4년에 걸쳐 박물관을 건설했습니다. 박물관 입장료는 15달러인데, 향후 10년간의 수입은 북한이 갖고, 이후 캄보디아와 반씩 나누다가 나중에 기부하는 것으로 계약했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12세기 캄보디아 번성기의 앙코르와트 건설 현장을 묘사한 농구장 4개 크기의 초대형 전경관입니다. 북한 화가 63명이 4개월간에 걸쳐 4만 5천여 명의 인물을 전경관에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북한은 전쟁기념관의 대전해방전투 전경관을 만든 경험에 기초해서 캄보디아 박물관의 전경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경관을 처음 만든 나라가 북한이 아니라 러시아였다는 것을 아는 북한주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1812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몰아낸 후 러시아는 전쟁기록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프랑스로부터 잡아온 50여 명의 화가들과 러시아인 화가 50여 명으로 하여금 유명했던 보로지노 전투장면을 115m의 길이에 그려 넣었는데 둥그런 천장까지 배치하였습니다. 그리고 폐허가 된 현장을 아래 부분에 실물로 배치하여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마치 관람자 자신이 전쟁터에 서있는 느낌을 주도록 하는 그야말로 전쟁 파노라마를 엮어내었습니다. 이후 소련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스탈린그라드전투를 비롯하여 유명한 6개의 전투장면을 담은 전경관을 더 만들었습니다. 북한은 이를 모방해서 북한 기념관의 내부를 꾸렸을 뿐 아니라 그 기술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에 박물관을 건설하고 외화를 벌려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시기 남의 것을 많이 모방했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기념탑은 1960년대 초에 건설된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탑과 유사합니다. 북한의 개선문은 파리의 개선문과 착각할 정도로 닮았습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소련의 것을 본 딴 것이고 북한에서 독창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대안의 사업체계나 독립채산제도 중국과 소련을 모방한 것입니다. 천리마운동은 소련의 스타하노프운동에 기원을 두고 있고 3대혁명소조운동도 중국의 홍위병운동에서 발상한 것입니다.
북한지도부는 주체를 내세우면서 모방을 인정하기 싫어했습니다. 많은 것을 모방했지만 북한주민들은 외부세계와 격리되어 있다 보니 그에 대해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방은 생각처럼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오늘과 같이 발전할 수 있은 것은 모방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방은 단순히 남의 것을 따라 하는 흉내와는 다릅니다. 흉내는 목적 없이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지만 모방은 뚜렷한 목적의식에 기초한 따라 하기 입니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정 수준의 수정이 이뤄지며 이것이 곧 창조로 됩니다.
원래 우리 민족은 모방능력이 뛰어납니다. 한국도 산업발전 초기 일본제품을 많이 모방했습니다. 설계도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하면서 곁눈질로 배워서 신통하게 제품을 모방해내서 일본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뒤떨어진 나라는 모든 것을 새로 창조하는 것보다는 앞선 나라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발전된 나라를 따라잡는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모방을 잘 하려면 세상만사에 호기심을 갖고 눈여겨보고 따라 해보며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자면 주민들이 새로운 것과 많이 접촉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주민들은 새것과 만나 볼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세계와 많이 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곧 개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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