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협동농장의 분조관리제 대신 개인관리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했습니다. 개인관리제는 중국에서 1978년부터 실시한 가족도급제와 같은 것으로 가족을 단위로 땅을 나누어주고 생산한 생산물 중 일부는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개인이 처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농업생산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당시에는 북한도 농업생산에서 침체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지도부는 가족도급제를 자본주의 경영방법이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정책도입을 주장한 간부들을 처벌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많은 주민들이 중국을 부러워하며 중국식 개혁개방을 희망할 때에도 북한당국은 이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시장을 통해 확산되는 개인경리를 억제하고 어떻게 하나 국가주도하의 경제회복을 이룩하려 했습니다. 김정은 체제를 준비하던 2009년에 100일 전투, 150일 전투를 호소했고 화폐개혁을 통해 경제에 대한 국가의 유일적 지배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대중동원은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북한에서 전후복구 건설시기에 도입된 천리마운동은 높은 생산 장성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대중운동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피로현상이 나타납니다. 천리마 운동은 60년대 후반기부터는 별로 큰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1974년에 진행된 70일 전투는 단기간 성과를 냈지만 전투 이후에는 오히려 경제발전에서 침체를 겪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야심적으로 추진한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은 기대와 달리 별로 성과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중운동이 결코 경제발전의 장기적인 동력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생산을 발전시키는 주되는 담당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대중동원시스템은 사람들이 일한데 따르는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차례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점차 적당하게 일하는데 습관 되었습니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시장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노력한 것만큼 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국이 왜 좋은가 조사해본데 의하면 "내가 일한 것만큼 소득을 얻을 수 있어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제일 많았습니다. 이는 결국 북한에서는 일을 한 것만큼 소득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주민들을 다시 추상적인 구호로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지도부는 천리마 시대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런 방식에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사적소유를 허용하고 개인의 경리활동을 인정하면 체제가 붕괴되고 따라서 자기들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적소유뿐 아니라 장기간 지속된 가난과 궁핍이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등장했고 날이 갈수록 그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남한은 물론이고 특히 같은 사회주의국가였던 중국의 비약적 발전모습이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중국처럼 못사나 왜 중국처럼 발전하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 북한주민 모두의 가슴에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시장경제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북한지도부는 중국을 따라 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길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벌써부터 토지를 나누는데서 공정성이 결여되고 농사를 지은 후에 국가와 개인이 어떻게 나눌지, 또 농기계와 비료사용과 대금처리 문제 등 많은 실무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 협동경리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개인관리제가 부디 성공적으로 정착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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